22-23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 역사, 2004. 12쇄. **
P26 의술이란 천한 기술이고, 시정은 비천한 곳이다. 그대의 재능으로 귀하고 현달한 사람들과 사귀면 명성을 얻을 것인데, 어찌하여 시정의 보 잘 것 없는 백성들이나 치료하고 다니는가? 조 광일의 대답인 즉 나는 세상 의원들이 제 의술을 믿고 사람들에게 교만을 떨어 서너 번 청을 한 뒤에야 몸을 움직이는 작태를 미워합니다. 또 그런 작자들은 귀인의 집이 아니면 부잣집에나 갑니다. 가난하고 권세 없는 집이라면 백 번을 청해도 한 번도 일어서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어진 사람의 마음이겠습니까? 나는 이런 인간들이 싫습니다. 불상하고 딱한 사람은 저 시정의 궁박한 백성들입니다. 내가 침을 잡고 사람들 속에 돌아다닌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살려낸 사람은 아무리 못 잡아도 수천 명은 될 것입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니 다시 십 년이 지난다면 아마도 만 명은 살려낼 수 있을 것이고, 만 명을 살려내면 내 일도 끝이 날 것입니다.
P39 노파가 마마를 앓고 난 아이를 업고 있었다. 무슨 약을 썼냐 고 물었더니, 거진 죽게 되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시체 탕을 쓰라고 하여 따랐더니 나았다고 했다. 유상의 머릿속에 번쩍 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지난 밤 언뜻 본 의서에도 시체 탕에 관한 말이 있었던 것이다. 입궐하여 임금의 증세를 보니, 오면서 본 어린아이의 증세와 같았다. 시체 탕을 썼더니 바로 효험을 보았다. 시체 탕이 무엇인가? 사람 죽은 시체가 아니라 감 꼭지(시체) 말린 것을 달인 물이다.
P81 <홍길동>은 조선시대에 이미 소설화 되었고, ‘임꺽정’은 일제시대에, ‘장길산’은 해방 이후에 모두 소설화 되었다. 소설이 아닌 실제의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은 과연 의적이었을까? 그들은 정말 탐관오리만을 응징하는 그런 도둑이었을까? 사료를 보건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아름답게 남는다. 부정직한 체제와 지배자에 대한 저항만으로도 그들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도둑을 영웅시하는 사회는 어딘가 곪아 있는 병든 사회다.
P145 체제공은 1720년에 태어났다. 이 자료의 연대가 정조 16년(1792) 9월 5일이니, 그이 생애의 전반기는 영조 시대에 걸친다. 금주 령이 삼엄했던 시절 술집 안주 란 김치와 자반 같은 소박한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정조 이후 금주 령이 완화되고 난 뒤 술집이 본격적으로 발달하자, 술의 종목과 안주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경쟁적으로 새로운 술을 개발하고, 안주로 현 방의 쇠고기나 시전의 생선 등이 등장했던 것이다. 술보다 안주에 혹하여 파산하는 자가 있다 했으니, 술집의 영업이 날로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 화진의 증언에 등장하는 술집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목로 주점은 서서 술을 마시는 선술집이고, 내외 주점은 “행세하던 집 노 과부가 생계에 쪼들려 건넌방이나 뒷방을 치우고 넌지시 파는 술집”이다. 그리고 색주가는 여자가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는 그렇고 그런 술집이다(매음도 한다).
P147 ‘사발막걸리집’은 국어사전에 사발먹걸리를 파는 목로라고 정의 내려져 있다. 곧 사발 막걸리 집은 목로 주점의 형태이긴 한데, 막걸리만 팔고 안주도 훨씬 간단한, 말하자면 급수가 처지는 간이 주점이 아니었던가 한다. 모주 집은 말 그대로 모주를 파는 술집이다. 모주란 ‘술찌끼를 걸러 마시는 것’ 으로 “술 중에 천품이요. 빈한한 자와 노동자의 반양식이라 없지는 못할 것이며, 추은 새벽과 해 질 녘에 이런 사람의 일등 가는 요리”였다. 술찌끼를 다시 걸러 마시는 모주는 비지에 무청이나 김치 따위를 넣어 끓인 전골을 안주 삼아 먹는 노동자의 술이었다.
P155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잔치 과거 바야흐로 고시열풍이다. 이는 건전한 사회현상인가. 독자들은 짐작할 것이다. 젊은 인재들이 고시의 한 길로 몰려드는 사회는 이미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고시 열풍은 고용구조가 불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무원이 갖는 직업의 안정성, 신분의 수직 상승, 권력과 돈에 대한 기대 등이 얽혀 빚어진 결과이다. 실로 고시 열풍은 한국사회의 병리적 요소와 모순이 총 집결된 현상이다. 이런 고시 열풍을 보고, 조선시대의 과거를 생각한다. 둘은 너무나 닮아 있다.
P220 어우동을 사형에 처한다는 판정을 내리면서 성종이 한 말이다. 나는 묻고 싶다. “풍속이 아름답지 않아 여자들이 음행을 많이 자행한다”는 판단은 정당한가? 감동과 어우동은 부도덕한 남성이 편만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출현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실제 성에 대한 탐닉은 여성보다 남성들이 훨씬 심했다.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권력을 독점한 남성들이 스스로를 처벌하지 않았을 뿐이다.
P291 조선후기 유행 주도한 오렌지족 별감
P324 승정 놀음은 먼저 관현악이 한참 연주되고 난 뒤 기생들이 들어와서 가곡. 12가사. 12잡가. 시조 등 성악곡을 부른 뒤, 여러 춤을 추고 검무로 대미를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모두 공연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 별감은 복색의 사치와 유행을 주도하고, 시정의유흥공간을 장악한 그런 부류였다. 이들이 역사 발전에 긍정적 기능을 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존재가 있기에 조선 후기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인간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와 경제가 소외시킨 인간의 구체적 삶의 모습 말이다.
P361 양반의 거주지, 사산밑 … ‘사산 밑’이란 서울의 주요 산 아래 형성된 동리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북촌; 북악산 . 노론 거주 *남촌; 남산 밑. 남인 무반, 삼색 잡거 *동촌; 낙산(동대문 북쪽의 타락산) *서촌; 서소문(소의문)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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