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년 책이야기

22-12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

paula won 2022. 6. 14. 12:22

22-12 이호신,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 학고재, 2007. 2. **

P6 어느 마을에도 유토피아는 없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의 아름다움과 안타까운 현실이 있었을 뿐이다.

P24 여리지만 강인한 꽃, 해묵은 열매를 달고서도 새잎을 틔우는 차나무의 은덕 이야 말로 상찬과 칭송의 대상이다.

P30 지난날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인 동시에 자연의 아들이었고, 고향에는 부모 친척은 물론이고 고향 산천도 있었는데, 지금은 도시화 하여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문명의 아들로 크다 보니 산천을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발전인지 오그라듦 인지 몰라요. – 전우익

P58 뇌물과 선물이 헛갈리는 세상. 그 진의를 가리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관계를 떠났을 때에만 가능하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 산촌은 해발고도가 낮을수록 눈칫밥을 얻어먹어야 했고 그 반대일수록 인심이 후하고 잠자리가 편했다. 외롭고 사람이 그리워서 반기는 인지상정인가. 아니면 산수에 물든 자연인의 배려인가.

P66 내가 만일 염주를 세는 것과 물레를 돌리는 것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물레의 편에 손을 들어 그것을 나의 염주로 삼을 것이다. 이 나라에 굶주림이 있는 한. –간디 자서전에서

P49 진위초등학교는 1900년에 개교하여 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곳이다. …….옛 진위현 관아가 이곳에 있었다기에 기단석과 초석이 실린 자료집을 들고 운동장을 헤맸지만 찾을 길이 없다. 다행히도 오랜 역사와 함께 뿌리를 내린 기념 수 백리향과 고목 두 그루가 서로 엉켜 자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 나무가 옆 나무 등걸에 팔을 뻗고 의지하여 수백 년 생존해 온 흔적이 살펴진다. 다른 나무의 기생을 뿌리치지 않는 저 나무의 너그러움, 아니, 묵묵히 다 받아주는 덕스러움이 생명에 대한 외경을 느끼게 한다.

P61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재해지만 자연에서 보면 자기 정화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순리와 섭리를 거스른 인공의 흔적은 가차 없이 파괴되었지만, 예전의 지세와 지형은 대체로 변하지 않았지요.”

P80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는 지도자가 필요했다면, 오늘날에는 감동을 주는 지도자가 필요하지유.”

P119 풍물굿의 미학은 푸진 것, 나누는 것입니다. 돈이 푸진 것이 아니라, 쌀이 푸진 곳이 아니라, 사람이 푸지게 모여야 되고 말도 푸져야 하고, 악도 푸져야 하고, 술도 푸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이 제일 푸져야 합니다. 그 푸진 것들이 모인 사람 모두의 것으로 나눠지는 곳이 판이고, 나눠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풍물 굿입니다. 그 어떤 물질보다도 소중한 웃음을 , 눈물을, 마음을 나눠 가지고는 것입니다.

P164 노와집은 화전민이 살던 집으로, 논농사를 짓지 않는 이곳에서는 초가지붕의 볏짚 대신 두꺼운 나무껍질이나 널조각으로 지붕을 이었다. 주로 소나무와 전나무를 많이 쓰는데, 수명은 10-20년 정도이나 부식된 너와는 2,3년마다 갈아 끼우며 벽면 또한 판자로 두르고 방바닥은 온돌을 깐다. …… 이처럼 너와의 틈새는 굴뚝 역할을 하고 비가 오면 나무가 팽창해 빗물이 새어 들지 않는단다. 여름에는 통풍이 잘 되어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이 덮여 찬 공기를 차단한 다니, 척박한 환경에 슬기롭게 대처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P169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왜 이다지도 아름다울까. 마치 카메라 줌과 접사의 분별처럼 마음 거리도 대상에 따라 거리를 갖는다 고나 할까. 여기 인적 없는 빈집도 눈 속 풍경에서는 모두 그림이 되었으니. “거리는 우리를 구원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거리를 두면 아름답게 보인다. 거리는 모든 것을 해소한다. 시간적 세월과 공간적 거리는 같은 차원이다.”라고 한 강우방 선생의 말이 실감난다.

P188 어린아이들은 흙장난을 좋아한다. 그것이 어머니의 살결이기 때문이다. 죽어 땅에 묻힌다. 그곳이 어머니의 품 안이기 때문이다. 깊은 맛이 나는 음식은 땅속에 갈무리한다. 그럼으로써 어머니의 젖 내음이 배어들기 때문이다. 따뜻한 봄날 들길을 간다. 비릿한 흙 냄새가 난다. 이 또한 어머니의 숨결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원천인 생기라는 것이다. –최창조의 <한국의 풍수지리>에서

P232 사치를 경계하고 검소함을 따르며 일에는 성실하게 임하고 화려함을 피한다.

P290 가천마을 ….. 정월 초하루 해돋이가 장관이라는 설흘산은 앞산인 응봉산과 함께 가천마을 을 품었다. 그 앞으로 펼쳐지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곳, 암수 바위가 사는 마을이 가천마을이다. 어떤 사물이나 대상 앞에서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요 감흥이다.

P309 일찍이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모든 생물은 환경에 순응하여 저를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길이다.”하고 하였다. 모든 존재의 실상은 연기설에서 살펴볼 수 있듯 이것이 있는 까닭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는 까닭에 저것이 생긴다.”는 자연 섭리를 오늘의 세태는 크게 망각한 듯 하다.

P324 하초숲은 계절이 변할 때마다 언제나 설레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한다. 그중 가을날 비 오듯 다양한 가을빛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잔가지에 내린 눈이 얼어서 수정처럼 빛나는 겨울 나무의 눈꽃은 내내 잊지 못한다고 한다.

P346 자연은 역시 주저없이 돌아가는구나. 푸른 잎의 소망으로 한때 하늘과 바람을 벗하고, 단풍의 열정으로 붉게 타오르다가 이제 흙빛으로 침잠하는 저 지극한 순연.  ……. 낙엽은 뿌리로 돌아가 다시 새 생명으로 만나기 위해 대지의 품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안긴다. 자연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개성을강조하는 시대에 도리어 개성을 잃어버린 환경은 무엇보다 자신의 뿌리를 상실한 탓이요, 비판과 성찰 없이 남을 흉내 내려는 맹목의 소산이다. 이 멈출 길 없는 속도의 삶 속에서 우리가 끝내 다 다르려는 곳은 어디일까. 결국 돌아갈 수 없는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P352 깨끗하게 방을 비운 뒤 불을 넣고 길손의 이부자리를 펴준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예전에는 인형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일상의 곤고함이 주름만큼이나 깊었을까. 고단한 눈을 비비며 하품 속에 들려주는 사연은 화전을 일구며 4남내를 길러 온 촌부의 눈물겨운 육성이다.

젖먹이는 업구유, 두 살 터울의 젖 떨어진 애는 걸리고 팔밭(화전)으로 가는데, 장작으로 불을 때 가지고 국 끓이고 보리밥에 감자 넣고유. 두 번째 불을 때서 퍼 가지고 이고유. 이내 돌아와서는 국수 새참 또 이고 가면 애는 종일 울며 따라오지유.”

P420 세상의 빛은 계절은 물론 감정과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P434 마을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철저히 아웃사이더가 되어야 한다. 과거나 현재, 미래의 분리가 없는 시간 밖에서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혈연이나 지연의속박이 없는 인연의 사슬 너머에서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김준원, <진화는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