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 책이야기

20-30 눈을 감고 보는 길

paula won 2020. 12. 6. 07:03

20-30 정채봉, <눈을 감고 보는 길>, 샘터, 1999. 3. **

P26 그날 동공 안에 들어가 있는 잠시 동안에 고향의 여름 콩밭 언덕에 내가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P27 짓 푸른 순수가 얼굴인바다의 단순성을 본받게 하시고 파도 노래 밖에는 들어 잇는 것이 없는 바다의 가슴을 닮게 하소서. 홍수가 들어도 넘치지 않는 겸손과 가뭄이 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여유를 알게 하시고 항시 움직임으로 썩지 않는 생명 또한 배우게 하소서.

P68 멋진 회랑 식의 뒷간, 목재 창살 사이로 내다 보이는 산 허리며 숲이며 대밭. 바람 또한 설렁설렁 지나고 있어서 그야말로 청량감도 제일이다. …. 그날 나의 내장 속에 하얀 눈이 내리던 것 같은 느낌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P120 나는 독서를 지성과의 만남, 또는 대화라고 말하곤 한다. 곧 그 책의 지은이와 읽는 사람의 혼끼리의 만남이며 군소리를 제거한 속뜻의 나눔인 것이다. 더러는 말초신경이나 건드리고자 하는 글로써 독자를 유혹할 수는 있지만 그건 일순간의 거품일 뿐이다. 진정한 영혼의 양식은 정신의 피를 맑게 하고 탄력 있게 한다.

P124 “우리 고향도 그런 곳인데요. 하늘과 땅과 바다, 이 모두가 열일곱 살 소녀가 막 세수하고 나온 얼굴 같지요. 그리고 안개보다 옅게 끼여 드는 이내라는 것이 있습니다. 봄이면 안개 비라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비도 옵니다. 우리 고향에는 이런 미세한 것 말고도 호랑이 장가가는 비도 있습니다. 맑은 햇빛 속에 맑은 비 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얀 달빛 속에 하얀 눈송이가 내리는 겨울 밤도 우리 고향에는 있는걸요.”

P127 오규원의 동시집을 읽는 중에 점점 행복해졌다. 그것은 햇살 따사로운 날 꽃그늘까지도 환한 벚꽃나무 밑에서 바람이 흘려 주는 벚꽃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은 아슴한 감동이었다.

P133 피천득 선생님은 … “적당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제는 물질이나 명예 같은 것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도 같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금 더 잘 살려고 내가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린다 거나 외부와 타협을 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욕심이 생기면 사물을 제대로 못 보는 법이다.”

P145 살아가는 것이 굳어져 감이 아니기 위해서는 우리들 저 안쪽의 눈과 귀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작은 솔방울 하나한테서 산의 이야기를 듣는 것. 검불 한낱한테서 푸른 초원의 대화를 듣는 것. 모래알 한 알에서 집채만한 바위의 천만 년 내력을 듣는 것. 조개껍질 하나한테서 저 광활한 바다를 보는 눈과 귀를 원하는 것이지요.

P200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에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

P203 해가 들어 주어도 고맙고, 바람이 불어 주어도 고맙고, 눈이 와주어도 고마울 뿐. 그렇다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밤은 밤이어서 고맙고, 새벽은 새벽이어서 고맙고, 낮은 낮이어서 고맙다.

P204 어떠한 기다림도 없이 한나절을 개울가에 앉아 있었네. 미움이란 내 바라는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임을 이제야 알겠네. 개울물은 더함도, 덜함도, 바람도 없이 졸졸졸 길이 열리는 만큼씩 메우며 흘러가누나.

 

'2020년 -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9 잠든 행복을 깨워라  (0) 2020.12.06
20-28 바바호 마레 1호점  (0) 2020.11.19
20-27 부엌신  (0) 2020.11.19
2026 모두가 기적같은 일  (0) 2020.11.13
2015 들풀도 고향이 있다  (0) 202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