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 이어령, <생명이 자본이다>, 마로니에북스, 2014. 10쇄. ***
P21 페스티나 랑테는 최초의 로마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즐겨 쓰던 말이다. 로마의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성급 함은 금물이라고 여겨 이를 경계하는 말로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주조된 금 동전의 뒷면에 이 말을 상징하는 게와 나비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을 상징하는 이미지로는 그 외에도 달팽이 껍질 안에 들어있는 토끼, 돛을 달고 있는 거북이 등이 있다. ‘천천히’와 ‘서두르다’는 서로 완벽하게 대립되는 말이지만 이를 결합시켜 ‘천천히 서두른다’는 모순어 법이 탄생한다.
P24 유레카는 오래된 그리스말의 감탄사라 했다. 모르던 것을 알아내거나 잃어버린 것을 찾아냈을 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기쁨의 소리다.
P76 동면의 기적, 송장개구리 자신의 몸을 얼린 송장개구리의 콩알 같은 뇌와 심장은 움직임을 멈추며, 표피는 보라색이나 파란색이 된다. 기온이 올라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장기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송장개구리나 청개구리의 일종인 스프링 피퍼 같은 일부 종은 체내 수분의 65%를 얼려 단단하게 만들고, 심장을 정지시켜 말 그대로 얼움덩이가 되어 겨울을 난다.
P81 불경기를 뜻하는 영어의 리세션recession은 원래는 그렇게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리세션은 리세스라는 라틴어로 ‘멈춤’과 ‘쉼’의 의미를 갖고 있다. 잠시 성장과 전진을 멈추고 휴식한다는 의미이며 이것이 바로 밤과 겨울의 ‘멈춤’을 수용한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특성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이 과잉되고 더 이상 그 시장이 지탱할 수 없는 번영의 극에 이르면 여름과 가을철이 지나 겨울이 오는 것처럼 산업 경제에도 동면의 철이 찾아온다. 그렇다 긴 안목으로 보면 생물들의 동면처럼 불황의 엄동설한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일 뿐이다. 겨울이 없었다면 저 쉼표 없는 무한 경쟁과 노동의 정글에서 살아야 한다.
P84 새끼가 부화를 해도 먹이를 구하러 간 에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펭귄 아버지는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굶주린 자신의 위벽이나 식도의 점막을 녹여 토해낸다. 이것이 바로 ‘펭귄밀크’라 부르는 아버지의 젖이다.
P89 미개인들이 사는 동굴보다도 문명인의 콘크리트 바닥이 더 춥고 외롭다. 추위가 인간과 개의 벽을 허물었 듯이 백인들과 선주민의 인종적 벽도 무너뜨렸다. 추위에는 개의 추위도 없고 미개인과 문명인의 추위도 없다. 만물을 평등케 하는 하나의 추위에는 타자가 없다. 오직 살아있는 것들의 체온만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추위가 주는 생명애의 역설이다. 그래서 동사자들은 대개가 다 혼자 이다. ‘성냥팔이 소녀’ 처럼 그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혼자 얼어 죽는다. 동사자들의 죽음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외로워서, 곁에 사람이 없어서, 결국은 사랑이 없어 죽는 게다.
P110 만약 차가운 물이 밑에서부터 얼기 시작한다거나 얼음이 무거워 강바닥에 내려앉는다면 우리는 아마 물고기란 말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겨울 강물에서도 물고기가 살아나려면 섭씨4도씨보다 더 더워도 더 차가워도 안된다. 4도씨의 차가운 물은 동결되기 직전의 온도로써 물고기의 모든 활동을 둔화시켜 가사상태로 살게 하는 임계점이다. 그래서 물고기들도 개구리들처럼 동면 상태로 겨울을 나게 된다. 먹잇 감을 구하기 위해서 헤엄쳐 다니느라고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쉴 새 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여야만 살 수 있었던 물고기들은 비로소 노동으로부터 놓여난다. 얼음장 밑 4도씨의 물의 신비한 비중이 베푼 고요한 휴식이요 평화요 그 생명의 은총이다.
P114 우리는 약하고 무른 사람을 빗대어 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자는 그것을 단숨에 뒤엎는다. 노인들의 입안을 들여다 보면 이는 다 빠졌는데 혀는 그대로이다. 이가 혀를 무는 일은 있어도 혀가 이를 부러뜨리는 법은 없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드러운 혀가 강한 이를 이긴다. 부드러운 것을 강한 것을 이긴다는 이유극강은 노자의 중심사상을 이루는 패러독스로 실제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여성이 남성을 이기고 어른을 아이가 이기는 것과 같다. …. 노자 8장에 나오는 상선여수,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은 물과 같은 것’이라고 한 대목을 보면 안다. 물은 만물의 성자응ㄹ 도와 이롭게 하면서도 남과 다투는 법이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 거처한다.
P125 “조선시대에는 장독대 말고 ‘물독대’라는 게 있었다.” … 같은 냇물이라도 동서남북의 방향에 따라 다른 독에 담고 같은 빗물이라도 절기에 따라 입춘수, 입추수를 따로 받아 물독에 저장한다. 그리고 그 상징성과 용도에 따라 쓰임도 달랐다는 것이다. … 입춘수는 아이를 갖고 싶은 부부가 잠들기 직전에 마시고 입동 후 소설 전에 내린 빗물을 액우수라 하여 그물로 약을 달이면 곱절의효력이 난다고 했다.
P150 실제로 네로는 처형한 부유 시민의 몰수 재산을, 그리고 칼리큘라는 금화를 민중에 뿌려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로마는 점점 타락하고 빵과 서커스는 몰락의 원인이 되는데, 그것을 에베르제티즘이라고 한다. 요즘 말하는 포퓰리즘과 같은 것으로 공짜만 바라고 모든 것을 먹여주고 길러주는 공짜의 생활에 익숙한 풍조를 뜻한다.
P154 타우마제인에 대한 풀이 희랍사람들은 진리를 깨달았을 때의 쾌감, 그 즐거움을 ‘타우마제인’이라고 한다. 유레카가 물질의 법칙을 발견했을 때의 마음이라면 타우마제인은 생명의 법칙을 발견했을 때의 감탄사인 것이다. 모든 철학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깨달음의 순간에는 로또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얻은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이 기쁨이 바로 타우마제인이다.
P162 쓴 맛, 어른의 맛 아이들이 젖을 뗄 때, 쓰디 쓴 금계랍을 젖에 바른다. 약은 쓰고 꿀은 달다. 일본 음식은 달고 한국 음식은 쓴 것을 즐긴다. 한국은 쑥, 고추, 쓴 나물을 즐긴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와 자연의 차이를 볼 수 있다. 풀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두 쓰다. 꽃은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해 단 맛을 낸다. 아이들이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문화보다 자연에 가깝기 때문이다.
P169 콩 알의 농심 콩 세 알을 심어서 하나는 새가, 하나는 벌레가. 하나는 인간이 먹는 따뜻한 마음. 자연과 인간이 손잡고 사는 조화로운 세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하늘을 나는 새는 쫓아버리고, 땅속의 벌레는 농약과 제초제로 죽인다. 그렇다고 우리 인간이 과연 콩 세 알을 모두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P203 무역으로 부를 일으키던 포르투갈 역시 금에 욕심을 가지면서 점점 붕괴의 조짐을 보인다.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그곳에 매장되어 있는 막대한 양의 금, 그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들도 이제 무역을 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금광에서 직접 금을 얻으려고 했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지배한 50년동안 5억달러의 금이 브라질의 광산에서 채굴되었는데, 그 시대가 끝날 무렵 포르투갈이 가져간 금은 2,500만 불에 불과했다. 결국 포르투갈도 농업, 공업을 뒤로 한 채 금의 유혹에 빠져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입는 옷, 먹는 생선, 심지어 곡물까지도 모두 영국에 의지하게 되었고 그 대금의 지불로 금이 전부 영국으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 진실한 부가 무엇이고 허구의 부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 열심히 일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무역하고 공업을 일으키면 그 부는 진실한 부가 된다
P261 미래 기술의 핵심은 바로 IT information technology, BT bio technology, NT nano technology의 세 기술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IT의 중심지이고, NT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인천이 그린 테크놀로지로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과학기술을 통해 산업주의를 주도해온 서양 사람들이 인류 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듯이, 생명 기술의 중심에 들어선 한국인들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써 나가게 될 것인가는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P303 “그것이 관습이든, 한 가족의 자취이든, 추억의 집이든 좋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돌아올 것을 지향하면서 떠난다는 것이다.” 이 돌아올 곳, 끝없이 우리를 잡아당기는 극지는 우리가 다른 곳으로 망명을 하든 이민을 가든, 또는 지금은 헤어져 있더라도 끝없이 마음이 끌리는 하나의 가치가 있는 곳이다. 마음 속 자석의 법칙으로 끌려 돌아간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사는 것, 이것이 생텍쥐페리가 말하는 생명의 법칙이고 행동의 법칙이다.
P322 “과학 그 자체에서는 선악은 존재하지 않아. 사용하기 나름이야. 과학의 중요한 것은 지능과 기술만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마음과 애정 이란다. 사랑이 없다면, 과학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고 폭주시킨단다. 그것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
P328 인간이 자연의 마음을 품고 하늘의 마음을 품을 때, 네모꼴은 동그라미로 변해서 사람은 사랑, 사랑으로 바뀐다. 네모꼴을 동그라미로 바꾸는 그것 하나만으로 사람이 지닌 모든 조건이 변한다.
P341 척박한 환경을 살아나기 위해 바퀴벌레는 자기 몸 속의 세균조차도 이용한다. 바로 1억 4,000년 전부터 바퀴의 체내에 서식하고 있는 세균, 브랏타 박테리움이다. 브랏타 박테리움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이 세균은 바퀴벌레의 몸의 노폐물을, 바퀴벌레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분자로 변환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말하자면 바퀴벌레는 몸으로, 리사이클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균들 덕분에 바퀴벌레는 배뇨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P344—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1월 ; 일생은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두 손을 꼭 움켜쥐고 태어난다. 자기를 키운 엄마의 아기집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폐가 열리는 첫 호흡이 힘찬 울음소리가 되고 맨 처음 본 눈부신 빛이 눈물 한 방울이 된다. …. 빗방울 하나가 바다가 되듯이 태어날 때 흘린 눈물 한 방울이 인생을 담는 호수를 만든다.
삼나무에 꽃 바람 부는 달, 2우러; 언 산속에서 찾지 못한 매화 어느새 내 집 마당에 피어 있었네. …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탐매 정신, 그것이 바로 내 마당에 매화꽃을 피운 생명자본주의 정신이다.
연못에 물이 고이는 달, 3월; 자연을 지배하려던 인간 이제는 자연에서 배우려는 인간 …축구 골네트도 사각형에서 육각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21세기 사람들은 자연에서 배우고 그 슬기로 창조한다.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4월; 바퀴벌레는 배설물을 남기지 않는다. … 사람들은 바퀴벌레를 싫어하지만 사실은 오줌을 누지않고 몸 안의 세균을 이용해 아미노산을 만들어 재활용하는 슬기로운 생물이다. 바퀴벌레를 죽이기 전에 인간들 만이 쓰레기로 이 지구를 덮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
구멍에다 씨앗 심는 달, 5월; 집은 창조의 근원이다. 집은 ‘짓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 산다는 것은 곧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들이 모여 가장 큰 집으로 커진 것이 바로 국가다.
잎사귀가 다 자란 달, 6월; 기린과 찌르레기의 아름다운 상생 기린은 목이 길어 몸에 붙은 기생충을 잡을 수 없다. 것을 알고 찌르게기들은 기린의 친구가 되어 벌레들을 잡아준다. 기린에게는 고마운 청소부, 찌르레기에게는 풍요한 목장이 생긴 것이다. 이왕이면 약육상식하는 밀림만 보지 말고 기린과 찌르레기가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초원의 풍경으로 눈을 돌려보라. 살생의 받침 하나를 바꾸면 상생이 된다.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7월; 넓고 깊은 바다가 진주알을 키운다. 생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그 안에 무한히 넓고 깊은 바다가 있다. …. 생명의 바다가 작은 진주알 속에 있다.
기러기가 깃털을 가는 달, 8월; 코끼리가 아니다. 미래를 알려면 작은 모기를 보라. … 작기 때문에 큰 것을 이기는 바이오, 나노 시대가 오고 잇는 것을 모기소래에서 듣는다.
어린 밤 따는 달, 9월; 농업은 하늘땅사람이 하나가 되는 생명철학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사람을 아는 세가지 힘, 그것을 아는 것이 농사짓는 마음이며 슬기다. 농부는 시인이요, 철인이다.
새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달, 10월; 뉴턴의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라 높은 가지에 열리는 생명을 보라. … 떨어지는 것은 물리법칙이지만 지구의 인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식물에겐 생명의 법칙이 있다.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의 힘도 중력법칙을 생명법칙으로 바꿔놓았다.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 강을 건넜으면 타고 온 뗏목은 놓고 가야지 뗏목은 강을 건너는 수단이다. 강을 건너면 정한 목표를 향해 가야한다. 그런데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넌 사람이 그것을 버리지 않고 등에 메고 간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마찬가지로 과거의 문명은 생명을 살아가는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 그 기술, 그 문명에서 벗어나지 않고서 새로운 길을 갈 수 없다.
첫 눈발이 땅에 닿는 달, 1월; 정보의 홍수에 띄울 노아의 방주를 만들라. 지금은 빛의 속도로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세상이라 하지만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가족끼리 말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통신위성이 지구 구석구석을 이어 주는데 바로 옆 아파트 독거노인의 죽은 은 우편물이 문 앞에 쌓여야만 비로소 아는 세상이다. 정보통신을 한문자로 써보면 영어에는 없는 정과 믿음이라는 두 글자가 나타날 거다. 이 두 글자만 있으면 정보 홍수 시대에 노아의 방주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생명의 씨앗을 함께 담아라. 진정한 내 이웃들과 올리브 잎을 물고 오는 비둘기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P370 날치의 특성은 이미 그 몸의 구조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바다에서 헤엄칠 때의 지느러미가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날개가 되는 점이 바로 그러합니다. 물 속의 지느러미가 바다 밖에서는 날개가 되는 이 놀라운 변환, 날치의 지느러미가 날개로 트랜스폼 된다는 것! 본래 지느러미를 가진 놈들은 물 밖으로 튀어나오면 필연적으로 죽게 되지만, 날치는 오히려 그 지느러미를 가지고서 공기 속을 비행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느러미라는 죽음의 상징은 날치에게서 생명의 상징으로 화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한 몸으로 헤엄치고 나는 두 개의 행위를 해내는 날치의 이 놀라운 생명력, 적응력은 우리들에게 큰 시사점을 줍니다.
토포필리아(Topophilia)의 장소 사랑-넙치, 네오필리아(Neophilia)의 새 것 사랑-참치, 바이오필리아(Biophilia)의 생명 사랑-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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