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13.출애굽 여정 성지순례(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paula won 2014. 7. 11. 13:36

 

13. 출애굽 여정 성지순례 10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2006. 12.12- 1221일 천지항공

^^일정표^^

* 12 12() 인천출발 22:30 –기내숙박

*12 13() 도하, 카이로(비행기);

 06:40 상해 푸동 공항 경유하여 도하 도착 수 도하시내 관광 –12:10 연결 편으로 도하 출발 -14:55 카이로 도착 입국수속, 카이로 시내로 이동하여 이집트 박물관 관광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12 14() 카이로, 시내 산(전용버스);

07:30 피라미드, 스핑크스, 구 카이로(모세 기념교회, 예수 피난 교회)등 순례.  모세의 출애굽 경로를 따라 수에즈 운하(홍해), 마라(오윤무사), 르비딤(파란 오아시스) 경유하여 시내 산 도착.

*.12 15() 시내 산, 타바, 아라드(도보, 전용버스);

 01:30 새벽 시내 산 등정 및 산상 예배 후 시내 산 출발하면서 캐더린 수도원 외장만 봄.—11:00 이스라엘과의 국경타바통과 아라드로 이동하여 호텔 투숙 및 휴식.

*.12 16() 아라드, 예루살렘(전용버스);

    08:00 맛사다(케이블카 탑승), 사해(수영), 쿰란 공동체 순례.  예루살렘 도착하여 감람산, 승천교회, 주기도문 교회, 눈물교회, 겟세마네, 기드론 골짜기, 마가다락방, 다윗왕무덤 순례.

*.12 17() 예루살렘, 갈릴리(전용버스);

    08:00 베데스다 못 (만나 기념 교회), 십자가의 길, 골고다 언덕, 통곡의 벽, 시온 산, 가이사랴, 갈멜 산,  므깃도.

*.1218() 갈릴리, 암만(전용버스);

    08:00 갈릴리 호수(선상예배), 팔복교회, 오병이어 기념교회, 베드로 수위권교회, 가버나움, 베드로 집터 기념교회, (아마겟돈)-나다니엘기념교회, 마리아 수태 기념교회. 가나마을 혼인잔치 교회. 나사렛 순례후 벳산으로 이동하여 국경통과하여 암만으로 이동.

*.1219() 암만(전용버스);

    08:00 카락성, 와디무사(모세의 샘, 므리바샘), 페트라의 시크길, 엘바즈네, 야외극장 등 순례후 암만으로 이동

*.1220() 암만, 도하(전용버스, 비행기)

    08:00 마다바(모자이크 지도), 느보산에서 가나안 조망 후 암만 공항으로 이동.—15:55 출국수속 후 암만 출발. –19:20 도하 도착(경유) 기내숙박

*1221() 인천(비행기);

01:00 연결 편으로 도하 출발 – 18:20 상해 푸동 공항 경유하여 인천 국제공항 도착.

 

12 12

12 13() 도하, 카이로(비행기);

 06:40 상해 푸동 공항 경유하여 도하 도착 수 도하시내 관광 –12:10 연결 편으로 도하 출발 -14:55 카이로 도착 입국수속, 카이로 시내로 이동하여 이집트 박물관 관광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카타르; 경기도만하며 인구는 70만 국민소득은 석유로 인하여 4만불, 본토인은 1/3이며 외국인이 주로 일한다고. 카타르 본토인은 10만 불의 국민소득이며 왕정국가, 이슬람국가, 절대적인 왕권 국이며 무슬림 사원이 많다. 70%가 이슬람교인이며 인구의 50%가 도하에 산다. 천연가스가 세계 2위인 부국이다. 이곳도 한국인은 도착비자이지만 중국 등은 없다. 중동인의 한국이미지는 좋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도하는 완전 광야와 사막이다. 단지 땅 속에 보배가 있어서 부자이다.

      중동의 집; 특징은 외장보다 내장에 치중한다.

      낙타시장; 식용낙타는 300불 정도, 경주용낙타는 몇 십억이고 낙타의 혹은 1개다 그 혹 속에는 지방이 있다고. 공항외곽에 있다.

      과일시장에는 수입품이 많다. 12월은 오렌지 철이다. 비가 안 와서 거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중동의 오렌지는 2일이면 썩는다

      성화장소; 선수촌 스타디움. 본토인은 20만 명.

      대추야자나무(종려나무); 예수님 입성 시.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마호멧- 신의 마지막 선지자로서코란을 믿음.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여서 크리스마스때 작은 축제도 한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님을 인정치 않는다. 이슬람에서는 아들이 개종했다 하면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도 죄가 아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슬람교가 최다이다.

      도하(카타르)와 두바이(아랍에미리트); 두 도시가 경쟁하고 있다.

      사막에는 와디(우기철에만 강이 됨)만 있고 강이 없다. 오아시스(지하수 있던 장소)

      알자지라 방송국은 중동의 CNN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는 산양(이 나라 말로 오리) 석유가 나오기 전에는 진주로 유명했다.

      국왕집무실

      전통재래시장; 매사냥을 즐기는 카타르인, 향신료, 수직물등을 팔고 있었다.

      걸프만; 해변이 야자수와 더불어 아름답다. 천연해변인지라 해수욕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나와서 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조개잡이 전통배가 지금도 있다.

3 55분 공항 도착하여 오후 4 55분에 버스를 탔다. 가이드로는 이계성집사님

*. 연간강우량이 30mm인 카이로기에 인위적으로 물을 공급한다. 캐무트(검은 흙)라고 불렀다가 콥트로 불리워 졌다. 7,000만의 인구에서 카이로에서 1,700만 명이 산다. 빈부의 격차가 높고 중산층이 없다. 면적은 백 만천㎢로 남한의 5, 그러나 5%만 사용이 가능하고 물과 기술로 퍼붓는다면 60%가 가능하다. 사하라 사막; 3-5월에 캉신이라 하여 50일간 바람이 불고 겨울에 들어가는 시기이다. 시내산 등반 시에는 몹시 춥다.

헬리오플리스(태양의 도시)

박물관 앞에는 현지인들이 많다.

놀라는 것. 1. ; 차선이 없는 곳이 많다.  2. 여자; 검은 의복으로 피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3. 공기의 오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염된 도시다 오래된 차의 매연이 많기에

; 2006년 신형벤츠와 당나귀가 공존하고 있으며 폐차제도가 없다. 사이드 밀러가 안 달린 차가 많고, 라이트를 키지 않고 다닌다.

집에는 먼지가 많고 GDP 1,400$(백삼십만원)으로 대학교수도 십오만원의 봉급을 받느다고. 친북 정책으로 부분 경제개방한다고. 언어는 23개국이 아랍어를 사용하고 로타리 형식의 교통 문화로 신호등 횡단보도가 없다. 차비는 100원 정도이고 매달리면 공짜라고. 국교의 90%가 이슬람교며 9%가 콥트교

      나일강 다리를 지나감; 6,69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었으나 수에즈 운하 건설로 2번째가 되었다고.

유교병이 주식으로 갈색의 빵을 에이쉬라고 한다. 1파운드:200원에 8-10장 정도 산다.

내일은 430km의 버스를 타다. 점심은 한식도시락이며 모닝콜은 5 30, 식사는 6 30, 출발은 7 30분예정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KFC가 최고 인기이며 햄버거 콤보셋트가 3,000-4,000이라고

상류쪽의 강의 폭이 넓다. 남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강이다. 나일강 부채꼴 펼쳐지는 지점이 카이로이다. 이집트는 더우니까 밤 문화가 활성화되어 결혼식도 밤 8-새벽까지 한다. 찻집(시사-물담배, )에서 새벽 2시까지 이야기들을 한다고 한다. 일부다처제로 4명까지 가능하며 지참금제도가 있다. 기름은 저렴하여 1리터당 200-300원이지만 차는 비싸다.  한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호텔로 이동.

 

1214

      이집트박물관 -2. 피라미드.스핑크스 -3. 구 카이로(모세기념교회, 예수피난교회) -4. 르비딤(파란오아시스)경유하여 시내 산 중턱의 Catherine Plazs Hoter숙박예정이다.

 

날씨는 겨울에는 일교차가 크다. 아침에는 안개(8-9), 오후 6-7시에는 러시아워.

*.향수 Shop : 500 에이커의 땅에서 에센스로 만들어서 프랑스로 수출한다고. 알코올이 없어서 5년이 지나도 냄새가 날아가지 않는다고. 여성은 귀 뒤와 손목에 사용. 남성은 스킨과 섞어서 사용 가능하다. 29번은 사막의 비밀로 자정에 사용하고 25번은 샤넬5이고 39번은 마사지용으로(향수1t+1t+우유1t 섞어서 냉장고에 보관 후 사용하라고) 5번은 라벤다, 45번은 민트로 심장과 두통, 축농증에 좋다고.

피라미드 입장료가 10,000원이지만 현지인은 200원이라고..

식당에서 전통음식인 코샬, 샤와르마; 꼬치에 고기를 꿰고 소스를 바른뒤 빵에 올려서 먹는다.

하루 생활비가 1$=5파운드로 에이쉬를 20개 정도 살 수 있다고. 에이쉬는 참깨소스에 요쿠르트를 찍어서 먹는다. 치즈는 염소 젖으로 만든다.

*.헬르완(쓰레기 마을); 기독교인이 많다. 사회의 약자로 그들은 중요요직이나 승진이 없다. 아이도 대를 이어서 한다. 음식의 맛을 못 느낀다 쓰레기 냄새가 심하여서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집을 지을 때 땅을 구임 후 돈이 남으면 벽돌을 조금씩 사서 집을 지어나가기에 완성시키기까지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붕이 없으면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세금이 없으며 비가 거의 오지 않기에 종려나무 잎으로 지붕을 만든다.

위성안테나는 1997년 독일의 선교사에 의하여 들어와서 많이 있다. 그 이전에는 이슬람 경전에 관한 세 방송뿐이 없었다. 지금은 위성안테나로 기독교 방송이 있다.

나무가 없어서 가구 값이 비싸기에 빨래 다이가 장롱이다.

양은 비싸기 때문에 명절에만 먹고 소고기가 1kg 8,000원이라고 한다.

호스니무 바르크 대통령은 민심을 얻기 위하여 아파트에 월세 살던 사람들이 자기집이 되는 정책도 하고 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가 있고,

나일강의 배에는 1. 크루즈; 배안에서 식사와 공연을 하는 2. 배같이 생긴 레스토랑(정차) 3. 크루즈; 2 3일 동안 룩스르에서 아스반까지 여행을 하는 (15만원) 것들이 있다.

*9%만이 (630) 기독교이다. 이슬람종교의 자유는 허락하나 위험하다. 알아자르 대학; 이슬람 대학의 총장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살해의 위험이 있어서 망명하였다

*아랍어 인사말; 앗살라무 알데이 꿈- 당신에게 평화, 슈크랑- 감사합니다.

<이집트 박물관>; 이집트의 대표적 미술관. 1주일 동안 보아야 할 정도로...  선사시대부터 그레코로만시대의 유물 약 10만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으며 이것들은 이집트의 신전유적이나 무덤에서 발굴된 것으로 건축물의 일부, 부조, 벽화 등이며 투탕카멘묘의 부장품인 황금마스크와 관등 이다. 역대 파라오의 미라를 박물관 입구 좌측에 소장되고 있다.

      돌판; 미이라 수술대; 당시 1,000만 구의 미이라가 있었다고.

      지팡이 칼로 뇌수를 통하여 옆으로 내장 등을 꺼내어 따로 보관함.

      내장에 시약 처리함

      약물로 안의 것을 녹여버리고 미이라로 만들었다고.

18C 도굴꾼들이 사람을 죽여서 가짜 미이라를 많이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박물관 1층의 로제타 석;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의 세계적인 발견이다. 신전 제사장들이 모두 죽고 문서를 불태워서 상형문자 등이 잊혀졌다. 1798년 나폴레옹이 군 막사를 지으려다가 땅에서 발견하여 카이로로 보내어 해독 케 하였다. 내용인즉, ; 히에로 볼리트(=상형문자), 중간; 데모트리(=민중문자), 아래; 그리스어(=고대어)--- 17년 후 프랑스의 장프랑소아 샹폴리앙에 의해 해독되었다고

      이집트 지도; 이집트의 나일강은 부채꼴 모양으로 아래서 위로 흐르며, 아래가 상 이집트, 위가 하 이집트로 아래에서 위로 발달해 나갔다.

      1층의 투탕카멘의 무덤의 도면그림은 (BC 1361- 1352) 투탕카멘은 8세에 즉위하고 10년 후 18세에 목숨이 끊어졌다. 당시 세가 약한 투탕카멘의 무덤의 많은 부장품으로 볼 때 람세스 2세의 무덤에는 더 많았으리라 추정된다.

      1층의 와인토기; 5,000년 전부터 만들었던 것을 성경에 나오는 요셉과 감옥이야기인 와인 장인이 있었음을 추정. 토기에 술 담은 관원 이름이 써있었고 맛이 없으며 감옥으로 보냈다고 한다.

      황금의자; 안은 나무로 된 것으로 도금한 것이다. 태양, 코브라, 빗살 밑에 앙크(=생명+)의 그림이 있었고 투탕카멘 왕과 아내가 향유 바르는 것, 금 신발을 각각 나눠가짐으로 보아 금술이 좋음을 나타낸다고. 발 받침에는 6개 민족을 상징하는 것이며 옆의 젖병은 상 이집트를 상징하고 국자는 하 이집트를 상징한다. 코브라+독수리를 ...

      사와구티; 응답하는 자; 순장제도(365개 붙여줌); 태양신의 보호

      토기인청; 밥공기, 말똥구리, 거위 등으로 벌- 직위명 만들어서 묻음.

      알교바스타옥돌; 빛을 투과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안에 불을 넣어서 램프의 역할. 향유 옥합의 재질이다.

      장미나무 꽃다발; 투탕카멘 왕의 관에 부인이 올려 놓은 것으로 3,500년 전의 장미가 있다.

      방부침대; 3개가 있어서 10일마다 옮기면서 미이라 화 시켰다.

      아르디스신; 800만 신 중의 하나로 저승사자 신으로 언약 궤에는 이 신 대신에 그룹들이 있다

      장기보관 옥돌; 알교바스타 옥돌로 미이라 만들 때의 내장인 간등의 장기를 이곳에 따로 보관했다.

      2층의 병거; BC 13C 설을 가정하면 왕의 병거, 16C 힛소스 민족 침입시 말과 병거로 철기문명이 있다는 증거. 고로 BC13C에 출애굽이 가능하다고.

      7개의 관; 관이 작은 콘테이너 박스처럼 점점 작아져서 7개의 관에 넣었다. , 금관-다음에 목관- ----- 7개의 관으로 덮었다. 부장품으로 미이라 위에 황금 마스크가 있고 몸에 걸친 금이 11kg에 이른다.

      미이라; 본래는 187cm가 수축되어 작아진 것이다.

      갈 상자; 갈상자의 아기 미이라도 발굴. 추정컨대 모세시대의 가정 가능하다고.

      <역사>; 고대 이집트에는 혼(가이), (카이), (아크드)이 있다고 입어 내세를 기원. 반은 혼으로 저승 세상 가고 영의 존재 머물 곳을 위해 미이라 만들고 부활을 기원했다고 한다.

      석상을 볼 때 국자와 젖병모양이 왕이고 살아 있을 때는 석상의 왼발이 나오고 손을 내리고 턱수염이 내려온다. 그러나 죽었을 때 제작된 석상은 두 손을 모으고 턱수염이 올라갔다고 한다.

      카프리왕의 석조; 뒤에 매가 한 마리 있는데 호로스 신으로 왕을 보호한다고 함. 4,550년전에도 섬세히 표현함. 의자 옆에는 이크루트(파피루수+연꽃)가 새겨져 있어서 상, 하 이집트 상징한다. 파라오의 왕관-메네스-직무왕관...

      할례된 토기상; 이집트의 관례로 13세 때 했다고 한다.

      서기상; 엘리트 계급 의상으로 귀를 내 놓고 눈은 수정으로 하여 지금도 실제와 같았다. 당시 서기는 면세, 부역 면제 자였다.

      가족 조각상; 왕족계 보존을 위해 근친 결혼이 유행하여서 기형아가 많았다. 이 난장이 남은 쿠푸왕의 수석 디자인 이었다고 한다.

      헤테 왕비의 무덤 부장품

      멘토텐 2세 석상; 이집트 3번의 부흥기인 고 왕국시대, 중 왕국시대, 신 왕국시대 가운데 신 왕국 시대의 왕으로 다리가 두껍다. 그에 따른 추정 설로 석회질이 쌓여서 생긴 병이거나 임파선이 부어서 생긴 병이라고.. 람세스 2세도 다리가 두껍다.

      나일강의 신; 하피신; 홍수의 범람으로 영토가 비옥하여 번영하기에 생명으로 생각한 이집트.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일강을 끊어버리는 성경의 10가지 재앙중하나.

      히피투트의 여왕; 모세를 건진공주로 추정.

      부조벽화; 석류, 포도, 무화과를 볼 때 애굽에는 과일이 풍족함을 증명한다.

      네패르티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아메노톤 4세의 부인이다.

      아케나톤상; 유일신사상을 퍼트림. 아케나톤의 어머니는 아메노톤3세의 티, 아버지는 국무총리로 요셉으로 가정할 수 있다고..

      메렌토타 비석; 람세스 2; 당시 글들에 신성하게 여겨서 거짓을 할 수 없었다. 13C 출애굽 지지. 4개의 민족을 물리치고 3개의 왕조가 있었다고. 밑에 이스라엘의 민족기호가 있다. 출애굽 얼마 전 시기.

      피라미디움; 아메노톤3세와 왕비상

      오시리스여신 석상; 저승의 신

      루트; 하늘의 여신, 옷은 별.

^^원래는 금이 풍족한 나라. 거의 대부분의 부장품이 도굴되었다. 금의 순도가 낮지만. 200억 원의 가치의 금을 녹여서 2억 원에 팔아버리는 일이 있었다.

*크루마; 도굴꾼의 마을

*Four Season Hotel; 현대건설이 지은 고급호텔로 지금도 상환받고 있다고 개인 손님은 하루에 50만원

*나일강 주변은 중산층의 데이트 장소이며, 지참금은 대략 200-300만원으로 2/3를 먼저 주고 1/3은 나중에 준다고.

<구 카이로>

사방 1km 성벽을 세우고 밖에는 왕조외 의 사람이..

시장에 있는 정육점의 고기가 까맣다. 파리로 덮여서...

예수님이 머무셨던 곳이며, 베네지라시나곱트는 모세 기념교회로 테러1순위 장소이기에 아랍인 검문검색이 있다.

아브가르- 예수 피난 교회

<예수피난교회> 4세기경 기독교 국가 됨. 284년 디오클라티아누스가 기독교 박해. 6세기경 이단 판정되고 642년 이슬람이 쳐들어옴. 외부세력에게 많은 고난 받고 초대원시 기독교모습.  바실리카양식(비잔틴 시대) 12개의 기둥이있다. 이 지역에 유대인이 많았기에 이곳에 오셨으리라 추정된다. 수몰된 동굴벽에 미카엘로 추정되는 천사가... 유네스코 복원지역 제 1순위라고. 콥틱글자 있었는데 그림으로 성경을 풀이했다고.

<모세기념교회> 회당 모세가 출애굽 전에 마지막으로 기도를 한 장소로 추정 뒷편에 나일강이 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6개월간 머물렀다고 추정. 이슬람이 쳐들어와서 여기의 유대인들이 20,000디나르를(1디나르는 노예 4명을 살 수 있다)요구했다고. 11세기 당시 베네듀에 의해 모금되어 20,000디나르에 샀다고.

*라마단 기간에는 모두다 2시 반에 문을 닫고 기도한다.

*이곳에서는 악령을 쫓기 위해 눈 화장을 짙게 한다.

*아버지가 결정해 주는 희잡과 차도르는 왜 입게 되었나? 더위와 바람을 막아 시원하게 해준다.

<광야 출애굽여정시작> 요셉과 모세의 스토리.

고센땅은 목축에 좋은 땅이다. 광야 주변의 풀들이 억세서 이런 풀을 먹고 사는 양과 염소는 좋다. 이곳 광야의 연간 강수량은 300mm로 스콜현상이다.

4시경 Rest House에서 점심을 들고, 1867년 페르드낭드에 의해 완성된 운하 해저터널을 지나가다.

*수르광야는 나무나 그늘이 없다. 출애굽시 하나님의 불기둥 구름기둥이 없었다면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 낮에는 그늘이 없어 뜨겁고 밤에는 춥기 때문이다.

* 마라의 우물; 홍해물이 들어오기에 쓰다. 종려나무밑의 50m 지점에는 물이 있다.

*시내 산 (2,280m) 1,000m에 산장이 있고 계단이 780여 개다. 낙타는 12불 정도 지불하면 2/3까지 올라간다.

<마라의 우물> 홍해 물이 들어오기에 쓰다고 한다. 종려나무 밑 50m지점을 파면 물이 있다고.

시내 산(2,280m)중간 정도 지점의 1000m지점에 산장이 있다. 계단 은 780이며 낙타를 타게 되면 12불 정도 내고 2/3정도만 올라간다. 올라가는데 3시간 내려오는 데 2시간 걸리지만 낙타를 내려올 때는 타지 말라고 권면함. 관절염이나 신장. 혈압이 있는 자는 절대 무리하지 말라

 

12 15

2 30분 에 모닝콜.  3시에 출발하다 시내 산을 향하여... 일출을 보다. 해가 나오는 것에 따라 산의 바위 색들이 변하는 장관을 보다.

준비물로는 썬 크림, 모자, 선글라스, 면 장갑, 후레쉬, 청심환, 추우니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기. 이곳에서 컵라면의 물이 1, 두잔 분량의 물이 1불이다.

*낙타는 뒷발부터 일어나니까 탈 때에 몸의 중심을 뒤로 잡고 내릴 때는 낙타가 앞발부터 오므린다.  속도는 걸어가는 사람이나 거의 비슷하다고.

내려오는 길에 모세 기념교회를 들리다.

*바란 광야를 지나가는데 초록색은 망간이요. 빨강색은 구리 아연 납으로 광석 성분이 많다. 바란 광야의 고운 모래언덕도 보다.

싯딤 나무

홍해

<에이랏>이란 도시는 최남단에 위치해 있어서 겨울우기에도 해수욕이 가능하다. 반면 북쪽은 스키를 탄다고. 휴양과 면세의 도시로 홍해의 아카바 만을 끼고 올라간다. 멀리 홍해 건너 요르단이 보인다.  아키바 만은 수심이 1,000m이다 시리아 북쪽지대까지 긴 협곡이 6,500km이라고.

<아라드> 에이랏에서 3시간 30분 후에 이곳에 도착하여 숙소로...

요르단은 사해바다 남단까지 에돔 족속의 땅이고 북단 까지 모압 족속의 땅이다. 그 외에 암몬 족속이 있다.

*이곳 광야(내게브)는 연 평균 강수량이 50mm이다. 사람이 인공적인 도움없이 살수 있는 강수량은 200mm이다.

* 이스라엘에는 종려나무(대추야자)가 많았다. 대추야자는 맛있지만 비싸다. 화장실은 1세겔을 내고 사용한다. 1달러는 4세겔. 뒷골이 아픈 것은 수분부족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인구 700만명중 500만 명은 유대인이고 나머지는 아니다. 미국의 유대인은 600만명이라고. 이중국적이 가능하고 700만 명중 2%만이 기독교(카톨릭. 정교회 포함) 100만 명은 이슬람교, 500만 명중 50%는 유대교, 50%는 세속인이라고 한다.

 

12 16

7 35분 출발: 아라드에서 남 유다 광야로

해안, 중앙은 산악(800-1100m), 요단 계곡. 그러므로 자연지형을 이용해야 하기에 해안지역으로 도로가 나 있다. 남북도로는 해변길이 있고, 요단 동편산지 이용한 왕의 도로가 있다. 동서 도로는 브엘세바에서 광야로 여리고, 예루살렘, 욥바로, 하이파에서 벳산으로 이어져 있다고.

<마사다>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며, 사해의 서쪽 해변에 위치. 주위의 유대 광야의 산들과는 고립된 높이 400m의 절벽 요새는 정상이 길이 600m, 가장 넓은 곳이 폭이 250m인 평지를 이루고 있다. 요세프스의 "유대 전쟁 사"를 통하여 이곳은 헤롯 왕의 요새인 동시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했던 "유대 전쟁"최후의 비극의 격전지였다.

*헤롯의 3단 궁전; 목욕탕이 냉, , 열탕이 있었고 수영장이 있었다.

*로마 군이 전령키 위해 쌓은 토성(가운데)이 있는데 6,000명의 유대인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그 곳에서 투석기와 나무도구로 전쟁.

*개관역사; 다윗 BC 1,000년 예루살렘 성 건축. BC722년 북 이스라엘, BC586년 바벨론 멸망. 느헤미야, 에스라 3차 귀환시 바사(이란)인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왕(BC333)이 익수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인도까지 진격하다가 코끼리 부대에 밀려서 돌아와 32세에 죽자 장수 4명이 나눠서 지배함 1. 셀루시드 왕조(시리아), 2. 푸돌레오 왕조(알렉산드리아) .........

-- 헬라 문명(BC63-AD641) 폼페이 진격하여 다스림. --1099년 아랍인 --십자군 --1517년 무슬림 -- 1917년 오스만제국 --1948년 영국 --오늘까지 이스라엘

*AC70-73년에 포위 당해 정복당한 마사다는 예수님의 예언이 로마의 디도에 의해 이뤄졌다.

*BC37년에 헤롯(에돔인)이 왕이 되어 그 측근과 가족이 마사다 에와 쉬고 본인은 페트라의 클레오파트라에게 가서 로마로 갔다. 고로 헤롯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했다. 그는 이때에 이곳을 요새화하고 휴양시설로 사용했다.

*로마 10군단 15,000명이 여기를 포위하고 실바 장군이 6개월 전부터 나무와 돌을 섞은 토성을 쌓았다. 9,000명은 병사고 6,000명은 유대인 노역자였다. 길은 앞 쪽에 뱀 길이라 하여 하나뿐이었다. 고로 유대인이 토성을 쌓게 하여서 방해를 못하여 마사다 안의 960명의 유대인이 자살하여서 모두 죽었다. 피신한 여자 2명과 아이 5명만 유일한 생존자로 이것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에 기록되어 있다.

*뱀 길은 1시간 30분이 걸리며 지금도 매번 초등학생들이 걸어 올라와 듣는 곳이며 장교임관식을 이곳에서 한다.

*"No more Masada"  1. 유대인의 정신장소. 2. 600만 대학살 장소

* Scoll room; 성경 두루마리 발견된 곳이며 사해사본의 일부가 있다. 외벽을 따라 이방들이 이어져 있어 평소에는 성경공부방으로 전시에는 돌을 채워 담으로 사용했다.

* 회당; 1960년대 이갈 야디가 발견한 곳으로 검은 선은 발굴 당시 남아있는 부분이며 그 위는 복원된 것이다. 바벨론 포로 시 생긴 회당으로 BC686년 솔로몬 성전 파괴로 장소가 없어서 대체장소회당. 예루살렘 성전과 외당이 공존(AD70- 오늘날 까지.  이곳에서 최소인원 남자 만13, 여자 만 12세의 성년식 치른 10명이 모여야 회당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이곳이 예수님 당시의 회당 모습으로 회당의 상좌는 고라 시대에 돌 의자(모세의 자리)로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에 돌 의자 왼쪽에는 토라 두루마리가 있었다.  회당의 방향은 예루살렘 방향을 향해 입구에서 바라보는 곳이 예루살렘. 이슬람교도 메카방향 향해 기도한다. 3-4C의 비잔틴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탈무드 방향이라 하여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다.

*물 저장고; 31개가 있고 안에 회 칠을 하여 물이 새지 않고 썩지 않았다. 그러나 물에 석회가 녹아 있어 혈관을 막았기에 올리브와 포도주로 해독을 하였다.

*헤롯의 3단궁전

*Large bath house; Room style식으로 벌집모양. 냉탕. 온탕. 열탕(구들장과 벽에도 도관이 있어서 따뜻함)

*창고; BC37년에 준비된 무기와 식량들에 7대 소산인 밀. 보리. 포도. 무화과 감람나무열매, . 석류를 건조시켜 이곳에 두었다. 100년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건조하고 여름에 섭씨 40도 이상이기 때문이다.

*역청;1. 아브라함 시대 그둘라 오벨 왕 전쟁 시 도망가다가 역청 구덩이(진흙)에 빠졌다.  2. 노아의 방주에 역청(석유의 타르) 칠했다.

*엔게디 지역; 폭포. 다윗 골짜기. 동굴의 사건을 상기할 수 있다.

*석회암; 건축재료로 사용하고 많은 오아시스가 생길 수 있다.

*사해 안에는 물고기가 없다. 주변의 물구덩이는 민물이기에 송사리가 산다. 갈대가 보이는 곳에는 민물이 솟아나기에 고기가 산다.

*종려나무; (=다말; 타마르) 여자이름으로 많이 사용하며 한 그루에 수천 개의 열매가 달린다. 광야에서도 잘 자라며 여리고에는 7개의 샘과 오아시스가 있고 학명은 "불사조"란 의미(피닉스)로 불로 살라도 다시 살아 나온다. 7년째부터 열매 열리고 30년 되며 다 크고 200년 까지 열매를 맺는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어 수나무의 새순을 꺾으면 나무들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유대인들이 원하는 메시야는 이 종려나무 같은 불사조 같은 사람을 원했기에 그 가지를 흔들었다고 한다.

<쿰란>; 1947년 여름 한 베두인 소년이 사해 북쪽 서안에 위치한 쿰란 지역에서 잃은 양을 찾다가 가파른 언덕 끝 동굴 속에 돌을 던졌다가 항아리 깨지는 소리에 양피지 성경사본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1951년부터 6년간의 대탐사로 11개의 동굴에서 800여개의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주전 8세기 경부터 일부 유대인들이 살았었으나 지진으로 폐허가 되고 그 후 주전 2세기 경 에세네파인들이 로마군의 박해를 패해 주후 60년 까지 일대의 동굴에서 살았었다. 이들은 주로 양을 치고 농사일을 하며 일부는 성경연구와 종교적 저술활동에 종사하였다.

*야아드의 일은 성경필사였다. 그들은 양피지에 필사하였고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생활을 하였다.  1번 동굴에서 발견된 것은 공동체 규칙 두루마리로 진 본은 예루살렘에 있다.

*공동식사장소; 벌점에 따라 식사량이 줄어들었고 이곳 외에는 다른 곳에서 먹을 수 없었다. 에세네 공동체이다. 당시에는 바리새파;유대교, 사두개파, 에세네파, 초기기독교 공동체로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가 있었다.

바리새파는 하나님께 열심 있는 사람으로 하스몬 왕조에 의해 유대인이 다스리는 아론 계열과 사독 계열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없어서 겸임함에 불만을 가진 에세네 공동체가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쿰란에 모여 살았다고 그래서 그들은 기도할 때 사해 바다를 보면서 했다. 빛의 자녀들이라 하여 동쪽 보며 기도했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요한과 예수님의 공동체. 요한의 활동무대가 이쿰란의 뒤였다. 요한도 이 공동체에 있다가 나갔다. AD68년에 로마에 의해 점령당하고 숨겨논 필사본을 아무도 몰랐다. 그 필사본이 이곳에 묻혀있음을 1947년 베두인 목동이 발견하고 자신이 4(후에 사무엘 대주교가 가지고 미국으로 도망), 친구가 3(히브리대학 스케니 교수가. 그리고 AD100년의 히브리어를 발견하여 아들이 1960 4개를 미국에 가서 250,000불을 주고 사 온다고). 구약성경의 1/4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와 비교해 볼 때 의미가 전체적으로 동일하다. 우리 성경은 1800년 레닌그라드에서 원저자가 쓴 내용의 필사가 동일한 말씀이었다. 11개의 동굴에서 (274개 가운데)양피지와 파피루스, 4번에서 약 1500개 발굴(조각된)되어 80%를 차지하고 1번에서 7, 11번에서 4개의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로뎀나무에서 사진 한장. 사해에선 모자와 선글라스가 필수이다.

*유대 모계혈통의 이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유대인이 아니다. 오직 사라의 후손만 유대인이다라 하여 모계혈통 중시. 이민의 요건도 할머니 한 분만 유대인이면 이스라엘 시민권이 가능하다.

*예수님 세가지 시험 받은 장소() ; 그 아래 마을이 여리고로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다. 처음 점령한 성으로 학자들이 발굴함.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BC 10,000-8,000년으로 추정한다. 왜냐면 샘과 종려나무가 있어서 동서로 잇는 길인 중국-- 욥바-- 실크로드의 끝이 여기다라고 여김. --유럽

발견한 학자들에 의하면 외부의 침입시 성벽이 안으로 무너진다고 그러나 성벽이 밖으로 무너진 곳도 있다.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의 마을은 현재도 구분이 가능한데 깔끔히 정리되어 지어진 정착촌은 유대인마을이고, 되는대로 지어진 마을은 아랍인 마을이라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집은 전승이라 생각된다고 왜냐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은 하룻길이고 와디킬트(깊은 골짝)이라 저렇게 위까지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양의 꼬리 뒤에는 기름 주머니가 하나 더 있다. 이것은 여름에 비한 방울 없어도 그 기름주머니로 버티기 위함이다.

*1948 5 14일 독립하였다. 아랍인의 반발로 전쟁이 일어나고 정착촌 철거를 요구하는 유엔과 팔레스타인...

*보안분리 장벽; 콘크리트 높이 5-6m로 예루살렘 둘러싸서 만들었다. 장벽 밖과 안의 통행이 어렵다. 2000 9 28일 팔레스타인의 항쟁으로 인한 폭탄테러는 지금까지 4,500명이 죽었다. 이 장벽으로 테러 위험이 급격히 줄었다. 뽑혀진 올리브 나무만도 4만 루이며 1km 200,000불이 들었고 그 장벽도 아랍인들이 지었다(일거리 없어서)

*벳바계 --감람산-- 동굴 -- 예루살렘시(황금돔);500톤의 황금 --전망산(히브리 대학이 있음)--멸망산 --감람산

<예루살렘>

*예수 승천교회 (장소);AD313년 이후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다.

2단은 1299년 십자군 시대에, 3단은 () 지붕을 세움(회교인이 돔 세움)

*주기도문교회; 마태복음 6, 누가복음 11 AD328년 콘스탄틴의 어머니 헬레나 가 성지순례와서 세운 교회가운데 하나(1.주기도문 교회, 2.예수탄생교회, 3.예수무덤교회)   입구에 주기도문이 벽화로 기록되었다. 사용언어는 아람어로 교회는 모두 동굴로 세워져 있다. 120개 국 언어로 주기도문이 벽화화 되어있다. 프랑스의 갈멜 수도회에서 관리한다.

*이슬람교의 3대 성지는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황금돔; 유대인들에 의하면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이며 이삭을 바치려던 모리아산의 제단바위이다라고 그러나 현재는 회교의 성전이 되고 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해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 바치려던 그곳이 예루살렘이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을 치고 이곳에 수도를 세우고 성전 세우려다 못 세우고 솔로몬이 13년에 걸쳐 성전을 지은 곳으로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것을 BC444년에 허술하게 재건되었다.

*BC37년에 헤롯 왕이 유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성전을 지었다.

1; 솔로몬(자재; 텔아비브의 야르곤 강을 통해)

2; 헤롯(예수님 시대) -- 70년에 파괴된다. 디도 장군에 의해서

*1537-47년에 오스만 대제가 세운 성전은 남쪽은 축소되고 북쪽으로 성벽이 확장되었기에 골고다 언덕이 성밖에 있었으나 오늘날은 성 안에 있고 마가의 다락방이 성 안에 있었으나 오늘날은 성 밖에 있게 되었다.

*벳바게--나귀타고 입성 --성전정화하시고 --마가의 다락방 --기드론 골짜기 -- 겟세마네(예수님 잡히심)-- 대제사장 가야바집 --빌라도 --안토니오 요새(현재는 아랍인 학교) --헤롯 궁 --빌라도 --십자가 형 선포 --골고다 언덕에 예수님 십자가 달리심--장사

*메시아가 왔을 때 황금 문이 열리면서 가까운 무덤부터 부활된다고 하여 그 근처에 무덤이 많다.

*무슬림(체인 돔)/유대인은 모두 매장한다. 단 시체 훼손 시에만 화장한다.

<눈물교회> 누가복음 19; 1937년에 자오바티무치오가 지으면서 바닥에 모자이크를 함. 모자이크한 가운데 서서 십자가 창문을 통해보면 골고다 언덕이 보인다(2개 겹치는 부분)

*아론의 싹난 지팡이(살구나무)

<막달라 마리아교회>-세 제자 졸고 있었던 자리라고.

<겟세마네 교회>= 만국교회:12개국에서 헌금하여 교회를 지었다.

겟세마네는 동산이 아니고 감람 산 자락에 있는 장소로 가트(기름틀) 슈메나(기름)라 하여 기름 짜는 틀이 있었던 곳이었다. 바로 올리브 나무가 있는 바위 위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

*올리브나무; 새로운 뿌리에서 계속 나오기에 원래 수명은 500년이나 그 이상으로 산다. 두 손바닥으로 쌀 수 있는 것이 60년 된 것이기에 현재 이 나무들이 아마도 예수님 당시의 나무가 아니었을 까 추정된다.\

*기드론 골짜기; 기흔 성; 압살롬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오늘날 유대인들이 자식의 교육장소로 "압살롬 같은 놈아". 다윗 성 밑의 기흔 샘부터 시온 성까지 히스기야 터널이 있다. 533m이다.

*우측에 가야바 대제사장 지붕 위에 닭이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 부인한 곳으로 현재 베드로 통곡 기념 교회가 있다

*마가의 다락방; 지금 건물은 1099-1201년 사이에 지어졌다. 120명이 성령을 체험하였고 만찬의 장소였다. 이스라엘의 다락방은 거실 개념의 장소다 1층은 다윗왕의 무덤이고 2층인 마가의 다락방은 회교 사원으로 사용했던 흔적이 있다(왜냐면 메카 방향으로 창문이 있고 음각으로 문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내무부가 관리한다.  뒷 편으로 히브리어로 힌놈 골짜기(헬라어로 게헨나0지옥) 몰록신을 위한 제단이 있었던 곳으로 성의 쓰레기를 태우던 장소였다.

*1967년 이전에는 예루살렘 절반은 유대인, 절반은 아랍인 이 다스리던 영토로 사거리에 철책이 있었던 곳을 지나가다. 동 예루살렘(구 시가지)유대인, 서 예루살렘(신 시가지)아랍인이 있었다.

 

12 16 (일요일); 5 30분 기상   6 30분 식사   7 40분 출발.

성벽 4,018m 8개의 성문이 있다.

1 다메섹 문...; 다마스커스, 아랍인이 많고 시장 골목임. 모두다 특성상 한인 교회도 토요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2. 헤롯 문(꽃 모양 장식)

3. 사자 문= 스데반 문. 1537-1541(슐다 이만 대제가 꿈에 사자가 나타나 괴롭힘에 따라 하나님의 전을 방치하는 자는 사자 밥이 된다고 해몽.   스데반 순교한 장소가 이 근처로 금요일마다 십자가의 길을 재현하다.

4. 양문 곁 베데스다; 스데반 문 근처 어딜 것이란 추정

안나 기념교회- 마리아의 어머니 기념(지하동굴). 마리아가 태어난 장소로 유일하게 십자군 시대 건물 그대로 남아있다. 왜냐면 아랍신학교가 있었기에 울림이 크다.  *물 길어다 성전 청소하는 물로 사용. * 예루살렘 성전에 1년에 3번 제물 드리러 왔다. 그러므로 흠 있는 양은 안되기에 부정이 만연했다- 장사치들 *제사장의 부정으로 성전 안에서만 통용되는 세겔이 있어서 15배까지의 폭리를 취했다.  5. 오물문. 6. 시온문. 7. 새문(New gate). 8. 욥바

       

       외벽과 내벽(성전의 성벽); 모리아산(=성전산)

       <십자가의 길> 2지점; 왼쪽 선교교회, 오른쪽 채찍교회,  3지점; 언덕을 내려와 골짜기 바닥.  4지점을 지나 5지점; 시몬, 6지점;베로니카 여인- 손수건-병자치유기적-바티칸에 보관, 7지점; 혈루증 여인이 나은 곳, 8지점과 9지점은 집이 지어져 있어서 돌아감, 10-14지점은 무덤교회 안으로 탄생기념교회이며 326년 이후 세운 교회로 파괴가 반복된 후에 현존은 십자군시대 건물이 대부분이다. 1808년 술 취한 성지 순례 객의 불로 도 파괴되어 지금까지 보수 중이다. 그래서 바닥은 비잔틴 시대요. 위는 십자군 시대건물이다.

10지점; 옷을 벗김, 11-14지점; 십자가 못 박힘- 페르시아 형벌을 그대로 로마에서 받음. 잔혹하여서 로마 시민권 자에게는 행하지 않았다. 이방인에게만 하고 보통 손목 뼈 사이에 박든지 줄로 손목을 묶고 손바닥을 박음으로 정신을 잃지 않고 손바닥 끝까지 고통을 받게 했다.  * 돌 바닥에 시체가 있었다고 한다. 안에 천사가 여인 맞이한 공간이 있었다.

*동산 안에 새 무덤은 당시 돌을 파서 시신을 놓고 일정을 기간 지나 후에 뼈를 추린 뒤 항아리에 넣어 장사 지냈다.

<통곡의 벽> 2,000년 전 시대

축대 위에 건물이 지어졌기에 축대만 남고 건물 모두 부서졌다. 성전이 부서짐으로 지성소를 모르게 되었다. 유대인이 흩어지다.

1; 성전이 파괴된 아빕 월 9일 홍수.  2; 돌이 운다(이슬이 돌에 맺혔다 하여서)  *1967 6일 전쟁에 빼앗고 근처 집을 모두 부수고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광장을 만들었다.   *토라(유대인 경전)를 읽으면서 우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자료소에 남아있다.  성년식(일주일에 두 번-, )과 모든 행사를 한다. 왼쪽은 남자가 오른 쪽에는 여자가 들어가도록 구분되어있다.  * 가던 날 마침 수전 절(하루카) 행사가 있었다.

           성벽을 따라 가다 보면 튀어나온 돌이 있는 담은 헤롯 시대 돌이고 벽면이 편편한 것은 그 후 복원한 것이다.

           유대인 귀옆에 머리털이 긴 것은 수염 양편을 꼰 것이다. –레위기 말씀대로, 기도할 때 쓰는 것-탈릿 등은 민수기 15장에 나오는 옷과 귀에 술을 만들고에 의해서이다.

           메주좌; 모든 문에 붙어 있는 것으로 키스하고 들어가거나 반드시 만지고 드나들었다. 이 메주좌 안에는 사람이 직접 쓴 신명기 6:4-9절의 말씀이 들어있다.

           이동; 동쪽 예루살렘(산지 800m)-서쪽 텔아비브(욥바)(해변)으로 베드로의 첫이방신, 요나의 욥바창, 므깃도(앗수르, 니느웨, 하란등)

           벧세메스를 (법궤이동의 사건이 있던 곳)를 지나감

           기럇어하림 산지는 여호수아 10장에 나오는 곳으로 야산으로 다윗골짜기 와 벧호른 비탈길이 있다.

1. 아얄론 골짜기; 여호수아 10장에 태양이 멈춤. 엠마오 도시가 이곳에 있다.

2. 소렙 골짜기; 삼손 이야기    3. 엘라 골짜기; 다윗과 골리앗    4. 구브린 골짜기

5. 라기스 골짜기; 산헤립이 토성을 쌓아서 라기스를 정복함.

           골짜기를 이용하여 해변의 블레셋인들이 산지의 이스라엘인들을 침략했다고.

           구릉지대를 지나가면서 평지가 나오는 데 점령을 해도 같이 살게 된다고.

           사사기에 보면 단에서 브엘세바 까지를 이스라엘의 영토로 언급함.

           늪 지대에 유칼립스 나무를 심으면서 농토화 시켰다. 이 나무는 수분을 많이 먹기에 비옥해 질 수가 있다고.

           블레셋 평양지대의 블레셋 군대는 가장 강했다. 왜냐면 철제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테레로사; 붉은 땅(석회암의 풍화작용으로 흘려 내려가서 생긴 땅으로)은 오렌지, 밀감의 당도가 높다. 102월 오렌지가 최고의 맛이며 자몽 등도 맛이 좋다고.

           텔아비브 도시 관통하여 동 서를 구분. 남북으로 올라가고 내려갔다고.

가이사랴 빌립보(갈릴리 북쪽 부분)과 가이사랴(해변)은 서로 다르다.

           헤르젤 도시(헤르젤이 창시한 시온주의) 지나가다. 벤부리온(건국의 아버지)와 헤르젤(시온주의의 아버지)은 이스라엘인에게 회자되는 사람들이다.

           네타냐 도시(성경의 샤론 광야 )지나감

           가이사랴(해변 항구도시); 가기 전 왼쪽에 화력 발전소(기둥 3)옆이 가이사랴인데 모터관리 수리를 두산 중공업에서 한다.

           <가이사랴> ; 예수님 당시의 황제는 옥타비아누스다 *세계 최조의 인공항만이다 바다가 얕기에. 헤롯이 로마와의 관계 위해서 항구를 건설하였다(BC22-Bc10)-운동 경기 개최. 그러기에 로마원형경기장이 있었다.(45,000명 수용). 로마원형극장(4,500)수용.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십자군 시대 건물로 이 성채를 짓고 예루살렘 탈환을 시작했다.

*황제에게 바치는 도시라 하여 가이사랴라 명명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아들인 빌립이 만든 도시다. *원형극장, 헤롯궁, 원형경기장을 돌아보다. *빌라도 총독은 AD6년 아킬레오가 폐위되자 이곳에 와서 살았다. 1년에 3번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만 총독이 예루살렘에 왔다. 사형권한은 총독에게만 있었다.

           <원형극자> 소리가 다 들리도록 건축했다. 모든 돌은 이스라엘이 아닌 곳에서 가져왔고 샘이 없어서 북쪽 14km에서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해 높이 8m의 도수교 건설되었었다.

           <갈멜산> Book [예수시대의 생활풍습] 성바오로 출판사에 의하면

*최대 올리브 생산지역으로 올리브는 생으로 먹지 않을 경우 지방이 체내에 쌓인다. 그로 샐러드에 뿌려먹어야 한다고  *버전 올리브 오일은 올리브를 따서 돌로 살짝 굴려서 나온 기름으로 몸에 가장 좋다. 녹색 빛으로 맑을수록 좋고 걸쭉하다.  *튀기는 기름은 하등품으로 압착유로 튀겨도 된다.

           두르즈 마을; 스스로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예라 함.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선택이다. 군대 다녀오지 않으면 관공서 취직할 수 없고 남자는 34개월 여자는 26개월 복무하고 예비군 훈련은 만40세까지 매년 1개월 한다.

          갈멜산은 해발 480m로 오르는 길에 상수리 나무가 많다. 올라서 보니 이스르(씨를 뿌린다) (하나님) 평야가 펼쳐져 있고 바알 신을 섬긴그들  이스라엘의 최대 저주는 이슬이 안내는 것이다. 5-10월에 260일간 이슬이 내린다. 기손시내; 바알선지자 450명 죽인 사건   엘리야내 말이 없으면 우로가 내리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절기; *신년-9월 중순-10월 초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오는 시기다.

*초막절- 과일을 거워들이는 시기 비를 기원하는 기도를 한다.  *함신(50일 바람) 불 때 밀과 보리를 거누다. 환절기에 2번 분다. *건기에서 우기로(황사) 얼어버린다. 우기에서 건기로(황사) 물 말라 죽는다. 고로 남쪽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 남 유다가 남은 것은 이로 인하여가 아닌가 생각된다.

           <므깃도> 26번의 전쟁 흔적이 있다. 해변 길로 내륙을 들어오면서 처음 만나는 도시로 이스르엘 평야 지대에 있는 도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 교류 도로가 해변길 그 사이에서의 고란이 가나안 땅이다. 고로 솔로몬이 철병기성을 세운 3 도시는 게델, 므깃도, 하소르이다.

*; 고대 유적이 있는 지역으로 예를 들면 텔므깃도, 텔아비브

*솔로몬이 지은 성에는 6개의 방이 딸린 성문 구조로 3개의 성에 다 있다.

*곡식 저장고, 물 저장고(아합 왕 BC800년 이 밖의 샘을 끌어들여서)가 있다.

*투트모세 3세 탈취(BC1483)한 므깃도에 930여병기, 273,000(1석은 220kg)

*므깃도에서 이스르엘 지나 모래산 밑 마을은 수넴 마을, 나인 성이 있다/

*나인성은 내인이란 아랍 마을로 모스크 있는 지역이다.

*티베리아스 도시; 헤롯 안티파스 왕이 세운 도시로 티베리우스 형제를 기린다. 해저 200m의 갈릴리 호수(55km 21km이며 입구폭이 161m이다)는 요단강의 시작점이다.

 

12 18일 월요일 엔게브 키부츠(국영농장)

호텔, 낙농업, 바나나 농장, 한국 학생들이 자원 봉사자로 온다.

           <멘델눈>; 예수님 시대에 16개의 항구도시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다.

           <갈릴리 호수> 배 시간 8:15- 9:00 깊이 40m 베드로 고기, 잉어 , 정어리, 메기

그외에 팔복교회ㅡ 오병이어 교회ㅡ 베드로 수위권 교회를 들릴 예정이다.

           <팔복교회> *우슬초; 해독작용하는 허브로 유월절에 우슬초를 적셔서 양의 피를 문설 주에 바른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셨을 대 우슬초를 적셔서 입에 대줬다.

*유대인 복음서에 기록된 갈릴리 모습들과 고기 잡는 모습들이 일치한다.

*베드로는 가버나움에 살았다.

           <오병이어교회> 벳세다 들녁에서 오병이어 사건이 있었고 5세기에 침례장소였다.

*상부요단강 (벳세다옆)은 헬모산에서 유입된다.

*모자이크는 비잔틴시대였고 교회가 있었던 곳은 어떤 사건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잔틴시대는 화려하고 빛난 것이며 복원된 것은 투박하다. 지붕은 나무로 왜냐면 노아방주 역할.  유리 바닥이 원래교외희 기초 바닥이다.

           <베드로 수위권 교회> 요한복음 21; 배오른 편에 던져 고기 잡은 것, 153마리.  *베드로가 바다로 뛰어 니리다 *생선과 떡(3번째 나타나신 예수님이 식사하신 장소를 기념)  *멘사크리스터 는 라틴어로 그리스도의 식탁.  *안드래키아 는 숯불로 베드로가 부인할 때도 있었던 숯불이러서 베드로가 다가가지 못하였다.

           <가버나움>  예수님 시대에 중심지로  야이로의 딸, 중풍병자의 사건 *검은 색돌인 현무암 *흰돌은 이스르엘 평야에 남쪽은 석회암 지대.

<회당> 1;남자  2;여자

           <필사실> 지붕이 없었다 왜냐면 하나님이 보신다고

           <베드로 집터 기념교회> 비잔틴 시대교회로 팔각형으로 승리 상징 가운데 바닥은 원래의 터를 볼 수 있다.

           <베드로동산> *생선 가공공장; 막달라인 헤롯 안티파스영역에 있었다. 세금 피하기 위하여 안티파스 영역인 가버나움에 가서 살았으리라 추정된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갈릴리 해변의 생선을 선호했다.     *미그달(막달라 마을); 우측은 모샤브 키부츠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좌측 해변가로 이 마을이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를 이른다.      *탈무드; 이스라엘인의 8%만이 배운다. 성경은 성문 토라(모세 오경+ 알파)로 구전 토라(마쉬나)에 대한 랍비들의 해석서이다. 정통종교인만 배운다.(학교; 예쉬바; 유치원-대학교) 첫째 바벨론 탈무드;이라크(오늘날)지역에서 집대성한것  둘째 예루살렘 탈무드; 귀환후(AD400)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집대성한 것이 있다.     *킵파(유대인 모자); 정수리 가리기 위해서 쓴다. 맨살을 보일 수 없다.  러시아 유대인과 이디오피아 유대인들은 서로 인종 차별을 한다. 특히 브엘세바에서 살기 힘든데 약자들 제3세계에서 이민온 자들이 산다. 그러므로 급식을 못 먹는 수가 있다.    *이스라엘 영화; 쉰들러 리스트(실화), 피아니스트(실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 킹덤 오브 헤븐(1099-1221), 벤허의 촬영 장소무대가 가이사랴이다.     *갈릴리 가나; 요한 복음 2장의 혼인잔치 기념 교회, 크라프가나 지하에 1.5m의 돌 항아리가 비잔틴 시대의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항아리는 1m이다. 바닥 모자이크는 히브리어로 된 것이고, 다른 곳에 또 키르벳 가나도 있다.

           <나다니엘 기념교회> 바돌로매 (12제자중 1)

           <나사렛> 아랍인과 유대인이 유일하게 공존하며 살고 있다. 금요일은 아랍인들이 쉬고, 토요일은 유대인들이 쉬고, 일요일에는 기독교인들이 쉰다. 그러므로 이곳의 관공서는 주일 쉰다.  아랍인들은 씨족공동체로 사는데 지붕에 검은 통 있는 집은 아랍인의 집이고, 흰 통 있는 집은 유대인의 집이다.

           <마리아수태고지 기념교회>  마리아샘근처  중동최대의 교회(기독교) 52개국의 그림이 있다. 한국근 이남규(공주사대 미대교수)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라고 하여 모자이크 그림이 있다.   입구는 청동철문으로 예수님의 생애가 부조되어 있다. 2층은 현재 기독교인이 예배드리고 있다.  안은 60m의 높이로 백합꽃 모양의 천정(순결상징), 지하는 집터로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의 수태 알린곳으로 잘라서 보여주고 있다.   안 계단은 비잔틴 시대의 주거지와 연결되어서 예배드리던 곳을 잘라서 교회를 세웠다.     *옆에 요셉교회도 기독교인들이 현재 예배드리고 있다. 지하에는 침례터가 있고 모자이크 바닥인데 7계단은 돌을 통으로 쪼아서 만들었다.  *하라쉬(구약)(기술자): .구약 모두 목스라고 씌여 있지 않고 테크톤이라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목수라 보기에는 부적당하다. 그러므로 건축가 라 하는 것이 더 가깝지 않겠는가 본다.

 

요르단       이수진 가이드

12 18  17:00  벳샨 도착 암만(1시간 30분 정도 이동하여)

                20:00  암만 호텔 도착(Golden Tulip Grand Palace Hotel)

                         저녁식사 호텔부페식

           <개 관>  "하심 왕조" 500만명, 88,000제곱킬로미터로 남한과 동일하다. 25%만 농경지로 사용한다. 사하라 지역(모래사막)이 없고  바디하 사막(모래와 자갈)이 있다. 지하수가 매장되어 있으나 식수 난으로 목요일부터 토요일 까지만 가정에 식수를 공급한다.  국교로 이슬람교 교인이 90%이다. 10%가 기독교인(구교)이며, 로마카톨릭, 정교회, 콥틱교로  호적의 종교란이 있다. 한국인 선교사 100.'

입헌군주제, 1999년 호에이 국왕 현재는 압달라 국왕으로 길거리에 초상화가 있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교육열이 가장 높다. 문맹율이 10%미만으로 초등6년 중등3년 고등3년 대학 4년으로 고교졸업시에는 졸업고사를 본다. 실업율이 50%이기에 6개 국립대학을 나와야 좋다. 사막성기후와 지중해성 기후로 일교차가 크다.  연평균 강수량이 400mm이며, GNP 3,000불 로 생활수준이 월등하며 요르단 한 가정 5-15명중에 1-2명이 직업이 있고, 40%가 학생이다.  주변국가에서 원조 받으며 생활한다. 암만은 해발 900m지점이다.

 

12 19 06:30 아침식사 (호텔식)

               07:00 호텔출발.   아르논강 경유 --카락성(현재 십자군성 30분 관람); 열왕기 하 3장의 '길하렛셋' 성이였고 모압왕 '메사'가 장남을 번제물로 바친성(그모스신에게)  현재는 12세기의 십자군 성이 남아 있음. 세렛 강 경유하여 페트라로 이동(2시간 정도)

               12:00 점심식사( 현지식당에서 현지식 식사)

               13:00  식당 출발-페트라; 에돔 족의 수도인 성경 지명의 '셀라'로서( 25장에서 에서가 정착한 에돔인) (2시간 30분 정도 관람함)  민수기 20장의 '므리바 샘' '호르산' 정상의 아론제사장무덤', 현재는 아랍족인 '나바태족'의 유적이 남아있는 바위속의 조각 건물들 관람.

               14:00 페트라 출발-- 암만이동(3시간 정도)

               19:00 암만호텔 도착

               19:30  저녁 식사 (호텔 뷔페식)

  암만은 ABCD지역으로 나뉘는데 AB는 부유층 CD는 빈민층.   한국인 300명이 있는데 상주하는 가정은 3가정이다.

1.     목회자(한인교회) 30

2.     사업 ; 선호직업은 공무원으로 아침 8-8:30분 출근하여 오후 1:00에서 1:30분에 퇴근하고 의료와 연금제도 잘되어있다.

3.     70%의 외국인들이 있다.   중동전쟁 때 들어 왔다.

    *암만을 제외한 지역은 전통유목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두인족- 사막에서 텐트치고 목축업을 한다.  구약시대의 족장시대와 동일하다. 10년 전부터 4년에 한 번씩 1m이상의 폭설이 내리기에 주택생활과 목축생활을 겸하여 하고있다.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손님 접대하는 것으로 무조건 반갑게 여기고 떠나라 못한다.  아랍인의 인사는 악수하고 양쪽 볼을 맞대는 것으로 횟수와 친분의 차가 없이 한다.  페트라는 45도까지 올라간다. 텐트는 2-3칸으로 중앙에 거실이 있다. 인사로는 유목민 커피를 그리고 멘사비를 대접한다. 

      *빨간 기왓장은 부촌을 상징한다. 기독교인 10%중에 암만에는 3%가 거주하고 모든 기독교인은 A지구인 부촌에 산다. 

*까와- 아랍인 커피(에스프레소와 비슷)  네스카페-아메리칸커피.  사람 수에 상관없이 3잔만 가져오고 주인이 먼저 마신다(독이 없음을 보여줌) 그 뒤에 돌려서 마신다.

샤이(홍차); 일반차에 박하향 찻잎을 띄운다. 음식을 조금씩 남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준다.

*암만에서 공항까지는 30km정도로 가장 비싼 지역이며 해발 900m로 습도가 없다. 날씨가 선선하다 7-9월에도 그래서 별장이 많다.

*멘사비;  (요르단 전통음식); 양으로 만들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고체형 요구르트를 물에 2시간 담가 녹인 뒤에 양고기 위에 이 요구르트를 올려 먹는 것이다.

*이들은 시력이 좋다. 예전에는 ^120-130세까지 장수했다. 근심 걱정 없이 오로지 목축만 한다. 유목민들에게는 주택과 자녀 교육을 제공한다.  ^양들이 먹는 풀이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데 손마디 하나 정도의 약초가 많다. 예를 들어 45명이 관광을 하다가 5시간 사막에 머물 때 양을 20마리 잡고 모두 피하게 해 주었다. 댓가 없이 ^중동의 양은 엉덩이 부분에 꼬리가 3개 있는데 가운데가 진짜 꼬리이고 양쪽에는 2개의 지방주머니가 있는 것이다. 왜냐면 우기철에 풀을 많이 먹고 저장하기 위해서이며 양은 순종적이다. 목자가  당나귀를 타고 이동하면 모든 양들은 일렬로 이동한다. 목에 종이 달린 양이 리더 양이다. 모든 양들이 리더양을 따라서 한다. 양의 가격은 등급에 따라 $50-100, $150-200,$250-300로 중동의 양은 기름기가 없어서 유명하다.

*종교문제  비잔틴의 수도이며 시리아의 북쪽에 위치한 이스탄불. 서로마제국; 로마교황청, 이슬람; 사우디의 메카도시, 모하메드에 의해 창시됨. 동로마는 서로마에 요청한다. 로마 교황청에서 셀주크 터키를 아랍인에게 빼앗겨서 십자군을  결성한다(동기는 순수하다)

1099 15만명이 유럽에서 지중해로 1차 십자군 원정에 승리하여 예루살렘으로

1147-1149 2차 십자군 원정; 아랍의 장기 장군에 대항하나 실패한다.

1189-1192 3차 십자군 원정; 아랍의 살라딘 장군이 이집트의 왕비와 결혼하고 십자군 군대를 몰아냄. 핫딤에서 대승리하는 아랍. 카락성과 효곽성을 살라딘이 빼앗는다.

십자군 원정 시에 순수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농민을 모아서 월급을 주고 원정을 보냈다. 3차까지는 괜찮았으나 3차 이후부터는 약탈을 일삼았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상업을 시작한다. 군인이 돌아오지 않기에 농경지의 농노들이 줄어들고, 월급을 주지 못하고, 다음 번 전쟁에 내 보낼 군인들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국왕의 세력이 증가한다. 기독교에 대한 시각이 안 좋다. 기존의 기독교 박해는 없으나 이슬람 신자를 상대로 포교는 절대 용납치 않는다. 예를 들면, 개종 전에 종교 재판을 받고 누구들지 이들을 사살해도 된다고 판정된다.

           <카락성>  2차 십자군 원정 시에 길 하르셋 성지에 지어진 성. 이곳은 200만명의 이스라엘인의 이동 경로인 성이다.

출애굽 당시의 광야 길로 나무 한 그루 없다. 이 길을 걸어서 북상한다.

1100m의 카락성은 군사적인 성. 살라딘 장군이 난공불락의 성이라 하여 힘들게 점령하여 40년을 주둔한다. 지상1층과 지하 7층이 있어서 구멍이 계속 뚫려있다. 환기통과 채광창으로 물건을 전달한다. 창문은 바깥은 좁고 안쪽은 넓어서 3-5월의 모래바람을 차단한다.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군인들의 방이 많다. 들어가면 아래 규칙적인 돌이 예전의 성벽이고 아치형으로 후에 복원하였다. 아랍인들이 군인 방에 들어올 수 없도록 했다. 또한 20km마다 성이 있었다. 높은 곳에 세워서 적의 동태를 살폈고 크게 세워서 위압감을 주었다.

카락성은 70000명의 수용이 가능하고 실제는 20000명이 거주했다.

창을 통하여 왕의 도로가 보여서 성지 순례객들을 공격. 살라딘의 여동생도 순례 중에 약탈되었다고 한다는 설이 있다. 창을 통하여 화살 구멍으로 사용하였고 위에 사각구멍으로는 물, , 독사, 전갈들으로 공격했다.

  문을 잠그고 있으면 몇 달까지도 견딜 수 있었다. 물저장소(깊이13m)가 있어서 가능하다

  점령할 수 있었던 추정설로 1. 카락성주의 결혼식이 있어서 경비가 소홀한 틈에 2. 살라딘 장군의 여동생이 군인과 친해져서 비밀 통로를 알아서.

 

           <시리아나 레바논> 사도행전의 행적이 보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사돌바울 회심교회. 카우칸 교회. 직가 거리(곧은 거리). 아나니아의 기념교회. 침례요한의 사형 추정 지역. 페니키아의 유적(BC 6500). 시돈과 두로와의 행적인 레바논 교회.

           <아르논강>  올리브 농장과 교도소

와디강; 물이 흐르지 않다가 일시적으로 1-2월에만 흐르는 계곡

나흘강; 실제로 물이 흐르는 강

백향목; (=송백나무) 잘 썩지 않는다.

추정광야는 2군데로 2년은 시내산에서 38년은 광야생활

1.     바란광야; 노출된 광야로 전쟁의 피해

2.     아라바 광야; 전쟁의 피해 최소한. 물을 400년이상 마시는 지하수가 있다.

3.     세일산의 므리바샘; 모세 지팡이를 바위에 대야 하는 데 쳐서 물을 내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지역

4.     호르산에 이르러 모세 장사됨

5.     세롬강(에돔과 모압의 경계)

6.     아르논강(모압과 암논의 경계); 아모리족과의 전쟁. 바산족과의 전쟁

7.     에드레힐까지 감

8.     싯딤골짜기 쳐들어감

9.     요단강을 넘어서 여리고 성을 점령한다.

카락시장;중고시장으로 유명하다 속옷도 판다. 시내버스 요금이 80원이고 석유가 1리터에 400-500원이다. 페트라 입장료가 외국인은 40불이다. 현지인은 1. 평지이지만 이동거리가 2km(왕복 4km)이며, 마차로 이동할 시에는 왕복 2km 2인이 30+ 4=34불이다. 말을 5분 정도 타는 비용을 포함해서이다. 점심시간 12:30-4:00에는 말을 타기 힘들고 마부들 집은 굉장한 부자이지만 가난한 척 보이게 하고 잇다. 은 제품은 다 진짜 은이다 한국은 습도 때문에 색깔이 변한다. ^페트라의 특산품은 낙타모양의 모래시계이다. 가짜 모래 병이 많다. 파란색 모래는 무조건 가짜이고 색깔이 선명한 것도 가짜이다. 붉은 색이면서 뿌연 것과 공기가 들어간 모래 병은 색이 변한다. 작은 것으로 사라. ^사해 진흙(머드팩)을 수출한다. 60%가 사해진흙이고 꿀과 유황성분이다. .고생의 여드름 치료에 좋다. 유럽에는 50불에 판매한다. 용량이 150g정도의 튜브 팩이 개당 10불 정도이고 한 달이나 한 달 반정도 사용한다. 건성피부는 일주일에 한 번, 중성피부는 1주일에 두 번, 여드름 피부는 일주일에 세 번. 유통기한은 2년이다. 저녁에는 비누 세안 후 흔들어서 얼굴에 얇게 펴 발라서 15분 정도 지난 후 물(미지근한 물)세안 후 기초화장을 한다. 처음에는 화끈거리지만 안심하라.

^성꼭대기에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다.

^이스라엘보다 요르단이 더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북쪽 1시 방향 산과 산 사이에 소돔성과 고모라 성, 왼쪽 12시 방향 소알 성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와디강이 많고

^연평균 600mm이상이어서 웅덩이를 파고 비닐 깔아서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요르단 인광석. 수출 세계4. 농산물도 자급자족. 쳔연가스(화력으로 전기 생산)풍부하다.

^자체 생산품은 거의 없고 수입에 의존하여 GNP3000불 이지만 주변국가에 비해 월등하다 실업률은 50%이지만 인력을 수출한다. 지리적 요충지를 이용한 전 후세인 국왕은 유명함.

^ IMF이후 한국의 중고차 하루에 200대 이상 수입한다. 상호도 지우지 않은 채로.. 현대차와 삼성전자 제품 인정한다.

<페트라> 구약과 연관. 셀라지역(세일산)은 페트라에서 북쪽으로 60-70km지역으로 창세기 25장에 에서가 세일산에 정착하였다고호리족은 이라크인으로 추정하고, 점토판 50000점을 발견하였는데 갈대촉을 이요하여 쐐기 문자. 불에다 5일을 구음. 수메르인과의 교역 흔적. 이방민족들 정착. 호리족 몰아내고 에서가 솔로몬의 부역도 했다.

^구약 당시의 텐트는 검은색으로 염소털을 이용하여 짰다. 비와 바람을 막는다. 집시들이  텐트는 18세기 초 인도인의 이주로 삼각형이고 화려한 텐트의 색깔이다.

^아기 예수시절의 헤롯대왕은 피부병으로 마케루스 궁에서 휴양하면서 칼릴로이 유황 온천에서 살다 사망하였다

^맏아들 아킬레우스는 쫓겨나고 그 동생인 헤롯 안디바는 나바테 인인 부인이 있는데도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았기에 침례 요한으로부터 책망 받았다. 그 요한이 마케루스 궁에 갇혀 있는 중에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추면서

헤롯 안디바도 나중에 스페인으로 도망가 사망하였다. 또한 헤롯의 손자 아그립바왕이 야곱을 죽이므로 몸에 충이 생겨서 죽게 되었다.

^페트라는 시크(협곡)이 갈라진 계곡이라 입구만 바위를 잘라서 하였지 다 천연석으로 된 곳이다. 고대에 수로를 파놓았다. 최대 80km로 에돔인의 주거지와 나바테의 무덤으로 구성된다.  ^페트라 가기전에 식사후 므리바 샘(모세가 반석에 대고 물을 내라 했는데 반석을 쳐서 물을 내는 바람에 하나미의 영광을 가린 곳)은 지금도 맑은 물이 쉬임 없이 흐르고 있다.

^댐형식으로 막음(사암 바위인지라 빗물이 흡수되지 않고 깍이기 쉬운점을 감안하여 최근에 막아 줌으로 깍이는 것을 방지했다.

^Rock Oil; 바위 중간 중간 검은 띠가 무수히 있다. 석유가 가능하고 현 석유보다 공임이 더 들어 보류하고 있다.

^에돔인이 살았을 때는 약탈하고 나바테인이 살았을 때는 통행세를 받았기에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었다.

^수로 토관의 길이는 70-80m로 폭은 70cm정도였다. 토관을 만들고 속을 팠다.

^에돔인은 구멍을 파고 사는 민족이라 바위마다 구멍을 파고 주거하였다.

^바닥에 돌로 도로를 만든 것은 당시 로마가 점령한 도시는 모두 그리하여서 AD100년의 것이 남아있다.

^중간중간 나바테인들의 신상이 남아있다. 네모로 판 뒤에 원형모양의 시상이 있고 하체상이나 낙타, 배가 있는 것은 유래를 알 수 없으나 성지 순례객들이 그리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50,000장의 양피 문서가 발굴 중 화재로 소실되어 페트라의 역사를 알 수 없다.

^나바테인은 주로 무덤터로 거의 사용하였고 50,000명이 주거지는 텐트촌이어서 없어지고 원형극장 너머에서 살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인디애나 존스에 나오는 큰 신전 모습은 당시 나바테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아래 기둥과 기둥  사이의(6)말 탄 모습 조각(=저승사자) 그 위에 잔과 포도넝쿨 조각, 양쪽은 스핑크스로 조각, 안에 원형무덤, 양쪽에 사각 무덤, 여신상(아마존의 여인들), 중앙 꼭대기에 석류 모양이 있다. 이곳에 보물이 있는 줄 알고 총으로 쏜 흔적이 있다.

바로 이곳을 (-The, 카즈네-보물) 즉 보물창고라 일컬었다. 2층은 왕이 묻힌 곳이나 사암이라 팔 경우 무너진다. 지하에도 무덤들이 있다. 이 무덤 터가 비잔틴시대에는 성경공부 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입구에서 15분 정도 내려가면 입구가 나오고 계속 이어지는 분홍빛 사암 바위들의 행렬은 장관을 이루고 알 카즈네까지 마차가 간다. 타는 데 30불 팁이 4(2)이다. 이곳까지 2km이다. 엘 카즈네에서 또 걸어 들어가면 에돔 인의 주거지인 바위 위의 구멍들과 신상들(나바테)… 계속 가다 보면 원형극장이 나온다.

^원형극장; 서민들의 무덤이 앞에 있어서 장례식장—BC 6C 나바테 인 시절에는 로마시대극장비잔틴시대에는 예배처로로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의 부룩하르트에 의해 재 발견된 세계문화유산이며 BC3,000년 경부터 사용되어졌다.

 

12 20

 08:00 아침식사 (호텔식)

09:00 호텔출발-‘아벨 그라밈경유(11)—엘르알레 경유—‘헤스본 성’ (시온 왕궁전)경유마다바:성경지명 메드바이고 비잔틴시대의 요르단 동편 기독교 최대의 도시. 조오지교회의 세계 최대 최고의 모자익 성지지도 관람 느보산(모세기념교회): 신명기 34장의 모세께서 죽어 장사 되어진 곳으로 여겨지는 곳

11:30 점심식사(현지식)

12:30 식당출발-공항

15:55 공항 출발 카타르 향발

 

**게시판** 아랍어

아침인사; 사바하 알헤르

점심 인사; 말하바

저녁 인사; 마사하 알헤르

감사합니다; 슈크란

천만에요; 아프완

얼마입니까; 에데쉬

하나님의 뜻대로; 인솨알라

화폐 단위; 디나르(1디나르= 미화 1.5)

 

^우리아 장군의 사건; 암몬성(암몬 전쟁); 우리아 앞세우라

^암몬의 곰 신당(밀곰); 암몬- 이방인의 말발굽 아래 돌무덤이 된다. BC3C-프톨로미 왕가가 필라델피아로 변경됨. 18  암몬 3장 랍바성그리스필라델피아암만데가(10) 볼리(도시)—로마의 10대도시상업연맹

^신약의 예수님은 데가 볼리 도시 있던 곳을 두루 다니셨다.  AD4C중엽; 비잔틴시대에 암몬에 13개 교회가  AD7C중엽; 이슬람 시대에 암몬이 멸망.  AD749; 대지진 후 다시 중건함.

^유목민의 결혼 풍습; 근친 결혼이 많았다. 왜냐면 1. 부족의 규모가 클수록 권력이 크기에 예를 들면 마잘리 부족 수는 6,000명 족장(쉐이크)이 국회의원 후보 맘에 들면 그 인원이 다 표를 준다.   2. 여성도 상속을 받는다. 3. 어릴 때부터 보아 왔기에(사촌끼리) 지참금 없고 2개의 계약서 작성하고 중매는 족장이나 부모가 한다. 약혼식; 계약서- 모든 혼수 비용은 남자 측에서 지불한다는 계약서 작성하여 결혼자금 마련되었을 때 결혼한다. 보통 2-3년 후에 한다.

^라마단; 나보다 가난한 이슬람 형제의 배고픔을 나눈다는 기간

^- 16-23세가 결혼 정년기로 결혼 하루 전 날 신부는 다과회(친구들과)를 연다. 결혼 당일 유목민의 경우 신랑측 집에서 전통복장으로 한다.  오후 5-7시 사이에 신랑이 와서 신부를 차에 태우고 이동하는 데 모든 차량이(친구들) 동네 한 바퀴를 경적을 울리면서 돈다. 바로 결혼식이 이뤄진다.  다시 모여서 양가 측 부모와 증인이 모여서 두 번째 계약서를 작성한다. 만약 이혼 시에는 위자료 금액을 제시하고 자녀는 여자가 키우고 양육비금액을 제시한다. 집의 금액도 제시한다.

^일부다처제; 왜냐면 잦은 전쟁으로 인한 미망인으로 인하여 4명의 부인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준다.

^결혼식 날은 밤새도록 파티 한다 (새벽 3-4시 까지) 결혼식 다음 날 하객들 점심식사를 대접한다. 신혼여행 개념은 없다.

<장례식> 24시간 내 매장한다. 시체만 꺼내어 매장한다.

^Naur마을; 성경의 아벨그라빔(1) 입다가 정복한 곳 중 하나이다. 입다의 성경이야기중에 처음 나오는 자(승전후) 제물로 한다.

^장례식에서 조문객이 음식을 장만하며 무덤까지는 남자만 동행한다. 비석을 앞 뒤로 세운 것은 남자이며 한 개 인 것은 여자고 비석이 없는 것은 어린아이이다.

^헤스본 성; 아모리 족의 시혼 왕의 궁전. 갓 지파가 정복하고 르흐벤 지파가 분배 받은 곳으로 현재는 텔 히스반이다. 도피성인 벳셀 가까이에 있었다.

^마다바; 성경의 메드바로 르흐벤이 분배 받은 곳으로 요단 강 동편이다. BC1,000년 사용된 아람어로 툴리(넉넉하다). 최대의 기독교지. AD500년 성 조지 교회 내부 바닥에 세계최초로 성지지도 5m* 25m의 성지지도. 이곳에 현재 14개의 교회가 있고 기독교의 7%가 분포되어있다.

^요단 강-원래는 물살이 세고 강폭이 더 넓었었다. 지금은 1-2m이지만.

^요단강 아래쪽의 사자와 뱃사공그림을 지도에서 지운 이유는 이슬람교가 생명체를 지웠다. 사슴과 물고기만 남기고.

^싯딤 골짜기(느보산)

^모자이크 지도;(비잔틴 시대) 230만개의 모자이크 지도를 3년에 걸쳐서 제작했다. 150여군데의 성지가 기록. 지금 매 주 주일 예배드린다. 현재 6개의 모자이크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80년 초에 중부 지역의 기독교인을 이곳으로 이동시켰다.(마다바로)

^복장; -스카프(핫다) 종교 상관없이 유목민은 빨강, 팔레스타인은 검정색

         -스카프(헤잡) 취향에 따라 색을 선택.  기독교 여성은 헤잡하지 않고 개방적 옷차림이다.

^느보산- 비스가산 봉우리 아바림산. 벧브올 맞은 편에 있으며, 신명기 34장에  초창기에는 시아그아(수도원)이 현재는 순례객으로 인하여 느보산으로 표기함.

1.     가나안 지역 확인. 2. 기념교회. 3. 2,000년 세운 기념비로 예수님과 12제자 상징한다. 모세는 120세의 나이에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고 정상에서 12시 방향이 가나안(북서쪽)27km 앞쪽. ( 3:25) 간청한 모세, 싯딤 골짜기( 22-23), 발람과 발락 사건(25), 바알신 사건(염병으로 24,000). 싯딤골짜기- 해저 300m   느보산-해발 800m  요단강이 보인다. 1980년에 놋뱀 조형물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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