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김 훈 글, 이 강빈 사진, 자전거 여행 1, 1쇄08, 2쇄10.
P40 무등산은 삶 속의 산이다. 세상이 끝나는 곳에서 솟아오른 산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내려와 있는 산이다. 산이 세상을 안아서, 산자락마다 들과 마을을 키운다. 이 산은 부드럽고 넉넉하다. …
P68 갈대는 빈약한 풀이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음을 간직한다. 그것들은 바람인 것처럼 바람에 포개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완강하게도 땅에 들러붙어 있다.
P93 4월의 산에서 가장 자지러지게 기뻐하는 숲은 자작나무 숲이다. 하얀 나뭇가지에서 파스텔 톤의 연두색 새잎들이 돋아날 때 온 산에 푸른 축복이 넘친다. 자작나무숲은 생명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작은 바람에도 늘 흔들린다.
P94 자작나무숲의 모든 이파리들은 제가끔 떨린다. 빛나는 숲이다. 잎이 다 떨어진 뒤에는 흰 가지들이 겨우내 빛난다.
P108 숲은 재난의 자리를 삶의 자리로 바꾸고, 오히려 재난 속에서 삶의 방편을 찾아낸다.
P113 고성군 죽왕 면의 산불 현장; 타버린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고 잇다. 숲은 죽지 않는다. 숲은 기어이 살아서 숲을 이룬다. 그루터기마저 죽어버린 숲에는 먼 숲에서 풀 씨들이 날아와 숲을 이룬다.
P143 추사는 대청마루 위에 ‘신안구가’라는 편액을 걸었다. ‘늙음’이 스며들어 있는 집이 좋은 집이다. 집은 새것을 민망하게 여기고, 새로워서 번쩍거리는 것들을 부끄럽게 여긴다. 추사의 ‘구가’속에는 그가 누렸던 삶의 두께와 깊이가 녹아 들어 있다. 오래된 살림집은 깊은 공간을 갖는다. 우물과 아궁이는 깊고 어둡고 서늘하다. 불을 때지 않을 때 아궁이 앞에 앉으면 굴뚝과 고래가 공기를 빨아들여서 늘 서늘한 바람기가 있다.
P266 옥정호는 섬진강 상류의 호수다.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가난한 마을들을 이불처럼 덮는다. 마을 아이들이 내 자전거를 몹시 부러워하여 민망했다.
P279 마암 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흙 향기도 난다. 아이들은 햇볕 속에서 놀고 햇볕 속에서 나란다. ….. 머리카락 속에서는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이 아이들은 억지로 키우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저절로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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