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책이야기

24-07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paula won 2024. 6. 4. 10:06

24-07 김용택 산문집, <그리운 것들은 뒤에 있다>, 창작과 비평사, 2001. 14. **

P7 한마을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마을에서 살았던 농부들은 행복했다. 그들의 삶이 비록 가난하고 누추했더라도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느리고 더디게 가꾸며 살았다.

P38 첫서리가 내리고 박덩굴이 시들면 어머니는 낭자머리에 바늘을 꽂고 조심조심 초가지붕으로 올라가 똥구멍에 바늘을 꽂아본다. 바늘이 들어가면 잊지 않은 박이고 바늘이 받지 않으면 익은 박이다.

P39 곡식을 담을 쓰는 바가지는 마른 바가지라고 하고 물이나 장을 푸는 쓰는 바가지를 젖은 바가지라고 했다.

P41 높은 달과 달빛, 하얀 박꽃과 둥근 박덩이들은 가난한 살림살이의 무엇과도 바꿀 없는 축복 자연의 풍경이었는지 모른다.  …..깁고 기운 바가지, 물바가지가 사라지면서 우리들의 생활은 여유를 잃어버렸다.

P56 집엔 온갖 것들이 함께 살았다. 새와 별과 달과 해와 온갖 벌레들이, 구렁이와 소와 토기가 살았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어느 나는 집에서 시인이 되었다.

P57 오랜 세월이 가면 집은 다시 흙과 풀과 나무를 키우는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버지처럼, 자기들이 집을 자기들이 손을 보고 손수 지어 가난하고 단출하고 수수하게 살았던 조상들의 삶의 자세는 위대하고 성스러웠다.

P148 그늘이 서늘히 내려와 있고 마을 텃논엔 노란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었다. 강물은 참으로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P171 꿈같던 사랑방을 아시나요. 지푸라기 어지럽고 망태. 덕석이 깔려 있고 뜯어먹은 메주가 매달려 잇던 사랑방을, 고린내, 담뱃 , 온갖 냄새가 진동하는 그리하여 냄새처럼 섞인 사람들의 숨결이 손끝에 닿을 같은 사랑방을 아시나요.  아무렇게나 누워도 편안히 걱정없이 잠이 오던 전설 속의 석유등잔 사랑방을 아시나요.

P175 농촌의 기초과정을 …… 나무하기, 베기, 마당 쓸기, 톱질하기, 토끼 잡기, 노루 잡기, 잡기, 물고기 잡기, 낚시 등을 배우고, 봄에 씨뿌리고 가꾸고 논두렁 깎고 매고 논물 보고 보리 베고 나락 베고, 괭이질. 낫질. 쟁기질 등을 배우며 …. 망태 만들고 덕석 만들고 장작 패고 아침저녁으로 쇠죽을 끓여 먹이고 키우고, 긴긴 겨울을 지내는 법들을 몸에 익히며 자랐다.

P188 5 산천은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해 자기 자신에 최선을 다해 세상에 자기를 드러낸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극치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자기 모습의 끝인 것이다. 자연만이 그걸 표현한다. 최선을 다한 것이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P193 나는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행복하게 사는 말고 무엇이 필요하며, 살아가는 산을 아는 말고 무슨 공부가 필요할 . 하나면 나는 족한 것이다. 나는 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산을 49년째 바라보며 산다. 그래도 지금 산만 바라보면, 산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P198 참새처럼 텃세를 부리는 것은 없다고 했다. 텃세란 많은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삶의 두께일 것이다.

P202 밤에 우는 새는 휘파람새와 쪽쪽새와 소쩍새가 있지만 휘파람새는 어쩐지 한이 맺힌 울음소리를 낸다. 달이 뜨고 산마다 밤꽃이 훤하게 , 모내기가 한창인 들판, 밤물 대느 농부들이 들판에 담뱃불을 반짝이며 눈에 부을 , 휘파람새는 구슬픈 소리로 길게 길게 들판을 질러간다. 머슴 살다 죽어 혼이 저문 소를 몰고 온다는 쪽쪽새 소리는 온밤을 하얗게 뒤척이게도 한다. …. 나는 지금도 새소리에 뒤척이나 보다. 감동이 확실하면 설명이 필요 없고 감동이 크면 감당하기 힘들어 말이나 글이 되지 않는 법이다.

P214 뜨건 물이 땅에 스며들어 땅속의 벌레들 눈에 닿으면 눈이 먼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벌레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일러준다는 것이다. 캄캄한 땅속의 벌레들의 . 어머니와 둘레 캄캄한 어둠속의 눈들이 반짝이며 별빛처럼 빛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별빛 하나 다치지 않으련다. 별빛처럼 빛나는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눈빛들에게 지금 우리는 눈감아라 감아라 경고도 없이 뜨건 물을 마구 붓지 않는지,

P219 작은 산봉우리 위에 둥둥 떠있는 하연 조각구름은 우리 민해가 그린 구름 같다. 박고석의 그림이 저렇게 단순했지 아마. 그의 그런 단순한 산들을 좋아했다. 단순한 위의 아무렇게나, 천진스럽게 그린 조각구름이라. 좋은 , 좋은 풍경, 단순한 아름다움이다. 저렇게 단순한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 그루의 나무, 포기의 , 덩이 돌멩이로 아무데 있어도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거스르지 않는 풍경이 되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