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 김정빈엮음, < 피천득의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샘터, 2003. ***
P16 “말은 어눌하게, 그러나 행동은 민첩하게”라는 논어의 말씀을 빌려 ‘만사를 여유롭게, 그러나 기쁨에는 기민하게’ 라고나 해야 할 선생의 마음씨가 생생히 움직이고 있다.
P20 정직한사람은 치장을 멀리하고, 솔직한 사람은 마음의 외투를 벗는다. 그러나 세상은 가끔 정직을 초라하게 여기고, 솔직을 가난하게 여기 나니, 우리는 때로 감기에 걸리는 수가 있다. …… ‘정직’으로 기다리는 봄, ‘솔직’으로 얻는 신선함을 위해서라면
P21 삶의 복 가운데 으뜸은 청복이다. 적게 갖고 크게 만족하는 마음, 다투어 피어나는 고운 봄꽃을 온전하게 봄꽃으로 만나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가지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덜어내려는 조촐한 마음일 것이다.
P24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잇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P67 아들이나 딸과 한 시간 이상 대화할 수 있는 부모라면, 그 자녀가 바른 길을 가지 못하게 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그 대화는 대화 여야 지 훈계여서는 안 된다. 한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하는 말은 대화가 아니다.
P77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P83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잇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 과거 회상에 아름다움이 많다는 것은, 미래에 욕심이 적다는 것이다. 무욕자다수요, 소욕자다복이라고 나 할 까. 추억할 만한 인연이 많고 그 인연으로부터 행복과 위안을 되새길 수 있다면 삶의 참 맛을 두 배로 느끼는 법. 그에게 가난은 단지 어려운 것일 뿐 추한 것은 아닐 터이다.
P100 인연은 반드시 사람끼리 만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주변을 구성하는 나무와 풀과 새와 나비도 또한 좋은 인연으로 서의 나의 벗이다. 내가 바라보기에 강가의 나무는 내 나무가 되고, 내가 감탄하기에 하늘의 새는 내 새가 된다. 그들은 ‘나의 너’가 되고,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내’가 된다. 이렇게 ‘나’와 ‘너’는, ‘나’와 ‘그것’들은 ‘따로’로 부터 ‘하나’로 이어지는 것. 진정한 삶은 그 ‘하나’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
P109 섬세한 마음은 같은 것들 중에서 다름을 본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면 오늘 아침은 오늘로 서의 새 아침이고, 오늘 보는 아내는 처음 만나던 처녀 적의 그 아내일 수 있다. 삶은 그 새로움으로 부터 힘을 얻는다.
P132 사람의 삶은 얼마나 고독한가. 그리하여 우리는 나와 너 사이를 ‘우리’로 채우고 싶어한다. 삶의 힘겨운 짐과 고통을 나 혼자 져야만 하는 너와 나의 삶은, 내가 너와 더불어 ‘우리’가 될 때 반으로 줄어든다.
P133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꽃을 모르는 사람이다. 꽃은 어느 꽃이든 꽃이고, 사람 또한 어느 사람이든 사람이다. 피어난 꽃으로서 곱지 않은 것이 없듯이 성숙한 사람으로서 매력 없는 사람은 없다.
P134 갖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이 없을 때 다이아몬드는 반짝이는 돌멩이에 지나지 않고, 소중한 아낌이 있다면 쓰다듬는 손길 하나가 천금보다 값질 수도 있다. 그러니 사랑할 일이다. 내일 갖고 싶은 것을 바라기에 앞서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돌아볼 일이다.
P139 삶은 이렇듯 작지만 따스한 정으로써 잔잔한 물무늬를 짓는다.
P152 열심히 일하고 나서 땀에 젖은 몸을 씻은 다음 마음만 먹으면 잠잘 수 있는 방이 있고 침대가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천국이 내 집 안에 있는 것이다.
P182 ‘피할 수 없거든 즐기라’는 말은 훌륭하다. 이 말을 좀 변형하여 ‘잃었거든 추억하라’고 말한다면 너무 슬플까. 그러나 젊음을 잃고서 그것을 추억하는 수필가의 마음은 슬프기는 커녕 아름답다.
P184 ‘덜어내고 또 덜어낸다’는 것은 노자의 말씀이지만 그렇게 소유를 덜어내셨다. 그 덜어냄은 물질 뿐 아니라 정신에도 미쳤으니,
P185 이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하나의 ‘이사’가 아니던가. 어차피 삶은 떠도는 것, 새로 간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지 다른 곳은 아닐 터이니, 어렵더라도 정을 붙여보자. ‘정이 깊으면 어느 곳이든 다 고향’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P188 ‘친구는 나의 일부분이다. 친구가 죽는 것은 나 자신이 줄어드는 것이다.’ 늙어가면서 나이는 늘지만 친구는 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또한 남에게서 그렇게 줄어든다. 그렇게 한 세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는 오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P213 주인이 일 년에 한 번 오거나 하는 별장은 그 고요함을 별장지기가 향유하고, 꾀꼬리 우는 푸른 숲은 산지기 영감만이 즐기기도 한다. 내가 어쩌다 능참봉을 부러워하는 것은 이런 여유에서 오는 것이다.
P214 정 많은 사람, 남의 고통에 눈물짓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만이 문학은 유치를 넘어 위로가 되고 사상이 되고 힘이 된다.
P221 비록 갇혀 있는 새라 하여도 종달새는 공작이나 앵무새와는 다르다. ….. 종달새는 푸른 숲, 파란 하늘, 여름 보리를 기억하고 잇다. 그가 꿈을 꿀 때면 그 배경은 새장이 아니라 언제나 넓은 들판이다.
P236 서울 성북동 아무 운치도 없는 집을 꾸미라고 근원 화백이 보내주신 손수 가꾼 국화분을 하룻밤 자고 나니 닭들이 꽃과 잎을 모조리 따먹어 부러진 줄기가 툇마루에 떨어졌더니, 닭도 시골 닭은 국화를 먹기는 커녕 국화 그늘 아래 즐거이 볕을 쪼이며 조은다. 사람이 콩깍지만 먹고 살거니 미물이 꽃을 먹는 풍류를 아니 배울 수 있겠는가, 하고 그때는 웃을 수밖에 없었으나, 닭만큼도 국화를 즐기지 못하는 지금의 나의 마음을 국화는 알 것이다.
P241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동정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 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서 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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