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 피에르쌍소/장주헌 옮김,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공명, 2016. 3쇄**
P6 나는 나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느림의 길이었다. 나는 꾸불꾸불한 물길을 따라 느릿느릿 흐르는 로트 강에, 그리고 9월이면 마지막 열매들 위에서 서성대며 서서히 저물어가는 늦여름의 햇살에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남자 든 여자 든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내며 시나브로 얼굴이 고상하고도 선하게 바뀌어 가는 사람들을 나는 부러워했다.
P60 적극적인 듣기를 통해 듣는 이는 상대의 말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잇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또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 상대방의 말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P66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즉 주도권을 잡고 대화를 끌고 가겠다는 욕심을 버림으로써 나는 좀 더 풍요로워진다. 또한 힘든 시간과 공백의 시간, 즉 침묵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색다른 경험을 쌓아 한 걸음 더 성장한다.
P76 권태는 세상을 정직하게 활용하는 수단이자, 세상에 한 발 더 다가가거나 반대로 세상에서 한 걸음 더 벗어나서 좀 더 마음껏 즐기기 위해 음미하는 수단이다.
P99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아가씨 든 나이가 지긋한 여인이든, 심지어 남자라 할지라도 어머니와 같은 친절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행동하면 우리의 몸은 우아함과 덕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P123 우리가 잊어버리려는 자세를 취하면 내면의 고향은 우리 안에서, 즉 우리 영혼에서 숨결과 향기와 추억거리로 되살아난다.
P127 버릴 게 없어서 라기보다는 무엇이든 호의 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원칙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따금 나는 나의 친구들이 자신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자식들이 떠안게 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죽음의 시간마저 늦추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P129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에 지방의 소도시는 조금이나마 더 다소곳하게 변해가고 매력적인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 가랑비에 소도시는 친밀함과 행복감이 깊이 스며든 한 덩어리가 된다.
P137 모든 행위들은 자아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살아 있는 동안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적 성찰이나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 무엇을 더 갖춰야 할까? ‘인내’와 ‘겸양’을 갖춰야 할 것이다.
P139 재능이나 천재성은 느리고 더디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 조각가 루이즈 네벨슨은 …… “젊었을 때 이미 나는 오십 고개를 넘어서야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게 될 것이고, 그 나이에 이를 때까지 나에게 필요한 연장을 완전히 갖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143 느림은 민첩하지 않고 차분한 기질인 사람의 특징이 아니다. 느림이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벗어나겠다는 조바심에 서둘러 행동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P150 지하 포도주 저장고를 정돈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포도주가 숙성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P164 행복의 근원은 안락함이나 성공이 아니라 작은 즐거움을 맛보고 그런 즐거움에 만족하거나, 혹은 그럼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에 잇다. 채마밭의 행복이란 다른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그릇된 행복이 아니다.
P168 자기 자신을 전반적으로 자유롭고도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지 않을 까. 성공의 증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한 태도와 자기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P169 절제라는 미덕을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적은 것 만을 사용하는 일에 만족하도록 유도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도록 억눌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P187 움켜잡는 것보다 쓰다듬는 걸 더 좋아하고 목표점을 향해 곧장 가는 것보다 기분 좋게 이리저리 들러서 가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어떤 존재를 내 것으로 소유하기 전에 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모든 것을 아는 척하기보다는 약간은 모자란 사람처럼 보이는 걸 좋아한다.
P202 문화는 우리를 창조의 과정에 끌어들임으로써 우리 힘으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우리에게 제안된 것을 받아들여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P230 나는 사람들이 마음껏 머물 수도 있고, 근심에 싸여 있고, 혼란 스런 와중에도 활기차게 걸을 수 있는 공간, 즉 용도가 결정되지 않은 빈 공간들을 보존하거나 복원하자고 제안할 다름이다. 이런 소박한 계획만으로도 우리 도시의 외관을 크게 바꿔 놓을 것이고
P246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면, 또 잠든 어린아이를 깨우지 않으려면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야 한다. 공손한 사람들은 공원을 떠날 때, 심지어 세상을 떠날 때도 발끝으로 사뿐히 걷듯 조용히 떠난다.
P279 우리는 휴식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휴식에서 창조적인 회복의 행복을 발견하며,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과 타인의 정중한 행동을 즐기듯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P271 순박한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의 휴식 모두를 경험한다. 혹독한 삶을 살아내면서도 자신에게 이따금 주어지는, 빡빡한 삶의 리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순간순간들을 넉넉히 즐기기 때문에……
P288 저자 피에르 쌍소는 어떤 사건이든 여유 있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 시간에 쫓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바로 그런 지혜이며, 그런 지혜에서 비롯되는 능력이 바로 ‘느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걷기와 듣기, 권태와 꿈꾸기와 기다리기, 글쓰기와 포도주 등을 주제로 느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느림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 나가사키의 커피 집 ‘남만차야’에서는 하얀 수염을 기르고 털실로 든 빵모자를 쓴 칠순의 주인장이 커피를 직접 핸드 드립으로 내려준다. 그곳에서는 CD대신 카세트테이프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부드럽고 인간적이다.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지만 이 안은 느리게 움직입니다. 상처받고 지친 손님이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내 커피로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P290 시간에 모든 가능성을 부여하고, 우리 영혼이 한가롭게 거닐고, 글을 쓰며 세상에 귀를 기울이고, 휴식을 취하며 호흡하게 해주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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