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소로우의 강>, 갈라파고스, 2012. ***
P20 콩코드 강둑 위에 서서 모든 진보의 상징인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우주와 시간과 모든 피조물이 따르는 같은 법칙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강바닥의 물풀들은 물결의 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럽게 하류로 몸을 굽힌 채 아직도 씨앗이 가라앉은 곳에서 자라지만, 머지 않아 그들도 죽어 물결처럼 떠내려 갈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바람도 없이 그저 빛나는 조약돌들, 나뭇조각들과 잡풀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성실히 이행하며 떠내려오는 통나무들과 나무줄기들은 나에게 아주 묘한 흥미를 일으켰다. 드디어 나는 이 강이 나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든 그 물결의 가슴팍 위에 띄워 보낼 결심을 했다.
P32 자연은 이런저런 미끼로 사람들을 멀고 후미진 곳까지 꾀어낸다.
P49 어리석은 자는 버릇처럼 저 사람은 아픈 데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건강이란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아픈 사람이 도리어 건강한 사람을 돌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P52 한적한 곳의 넉넉한 밤 소리는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답다
P53 밤에는 인간의 삶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법이어서, 인간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고 바람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P70 아주 조그마한 마을이어서 터무니 없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나, 언젠가는 이 마을에서 위대한 인물이 날 것이다. 부드러운 바람과 험한 바람 모두 이 마을을 지나기 때문이다.
P116 이미 오래전부터 쓰지 않게 된 말일지라도 살아 있는 자연을 깨닫게 하는 말이라면 어느 말이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P132 처음부터 끝까지 건강하기만 한 글은 무척 보기 드문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글에 담겨진 생각에서 나오는 빛깔과 향기를 놓쳐 버리기 일쑤이다. 빛깔 이야 어떻든 아침 이슬과 저녁 이슬을 보면 기쁨을 느끼고, 색깔 이야 어떻든 하늘을 보면 기쁨을 느낄 수 있단 말 인가. 가장 매력적인 글은 지혜가 가득 담긴 글이 아니라,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는 진솔한 글이다.
P172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은 대개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신중하지 못하거나 슬기롭게 처신하지 못해서이다. 무슨 일을 하건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은 무척 단순하다.
P174 가장 느린 맥박이 목숨에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에 영웅은 서두르는 법과 아울러 기다리는 법도 알고 잇다. 좋은 것들은 모두 슬기롭게 기다리는 이의 몫이다. 우리는 언덕 너머 서쪽으로 서둘러 가기보다는 여기 이 자리에 남아 있음으로써 더 빨리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
P180 겸손은 여전히 인간의 참된 미덕이다. 노인들은 삶을 뒤돌아보지, 앞날을 점치려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오로지 앞날을 자유로이 뒤섞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P186 “언제나 집착을 떠나 해야 할 일을 하는 이가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다.” “모든 몫이 욕망과 탐욕을 떠났으며, 모든 행위가 슬기의 불로 태워져 버린 사람을 어진 이라 부른다. 행함의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만족할 줄 알며,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는다면 아무리 행함 속에 있다 해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과 같다.”
P194 어떤 생각이든 진실한 생각이라면 억누를 수 없다.
P195 아주 오래된 책에서 자신의 생각과 닮은 생각들을 만나면 늘 기분이 야릇해 지면서 자극을 받게 된다. 이런 책들을 통해 후세가 겪는 일들도 건강하고, 홀로 설 수 있음을 알게 된다. …… 위대한 시는 읽는 이가 성격이 조급하든 신중하든, 그 나름에 알맞은 비율로 그 뜻을 밝혀준다. …… 위대한 시는 실천적인 이에게는 상식일 터이고, 슬기로운 이에게는 지혜일 터이다.
P207 자연은 갖가지 창작품 속에 가장 단순한 싹들을 발전시킨다.
P222 누구에게나 야생 자연은 가까울수록 소중하다. ……. 소나무와 단풍나무의 강직함은 자연의 오랜 청렴함과 활력을 힘주어 말한다. 여전히 우리의 삶은 소나무가 우거지고, 어치가 우짖는 이런 배경의 위안을 필요로 한다.
P258-259 어떤 젊은 샘물은 가장 늙은 강인 바다로 떨어질 때도 여전히 딸랑이는 음악소리를 내며 흘러 들어 가리라. 강의 신들은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와 그 음악소리를 가려낼 수 있고, 바다에 가까울수록 그 소리가 그들의 귀에 더 달콤하게 들릴 것 같았다. ….우리의 열망도 인생의 시냇가에서 또 다시 샘물로 솟아나 원기를 회복하고 맑아지는 것은 아닐까. 누렇고 미지근한 강은 거룻배를 띄워주고 물 그림자와 잔물결로 눈을 기쁘게 할지 모르나, 뱃사람들은 이 작은 실 개울에서 목을 축인다. 그들은 주로 이 순수하고 차가운 요소에 의지하여 생명을 이어간다. 인류는 이런 분별력을 지녔기에 오래 살아남을 터이다.
P266-267 예의가 있고 없고를 따지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어떤 이들은 겉으로 드러난 태도가 아주 거칠어서, 나무에 빗 대자면 거친 나무껍질만 있고 무른 고갱이나 백목질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때때로 나그네에게 무뚝뚝하다고 일컬어지는 우락부락한 사람들, 산악 길가에 사는 아마존의 아이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의 인사는 상대편 손을 움켜잡는 억센 손만큼이나 거칠고, 늘 예사로 대하듯 사람들을 대한다. 하지만 그들도 개간지를 넓혀 더 많은 햇빛을 받아들이거나, 많은 물자가 오가는 들판이나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언덕 남쪽 기슭으로 옮겨가 거친 고기와 도토리는 덜 먹으면서 낟알을 위주로 살아가기만 해도 충분히 도시 거주민처럼 될 수 있다. // 사실 전정한 예절이란 일부러 꾸민 세련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사건들을 오래 겪으면서 행운과 불운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넘김으로써 올바른 기질과 특성으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것이다.
P274 옛 글에 쓰여 있듯, “어느 집에 기대를 갖고 들렀다가 실망만 느끼고 돌아서는 나그네는 집주인의 좋은 행실은 남김없이 갖고 떠나지만, 자신의 분노는 그 집안에 남긴다.”
P313 강은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풍경으로 숨어들어 고요히 풍경을 짓고, 아름다움을 더하며, 하늬바람처럼 자유롭게 오간다.
P327 가장 뛰어난 돌장이는 구리연장이나 강철 연장이 아니라 이처럼 시간을 넉넉히 갖고서 한가하게 흘러가면서 부드럽게 스치는 공기와 물인 것이다.
P340 좋은 벗과 대화를 나누더라도 개개인을 이야깃거리로 삼게 되면 으레 메마르고 하찮은 사실이나 이야기하게 된다. 개개인의 인격을 들어 말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우주가 파산한 것처럼 여겨진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헐뜯기로 기울기 쉽고,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이야기의 테두리는 더욱더 좁아진다. 새로운 벗을 사귀게 되면 오래된 벗은 불친절하게 대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가정주부는 말한다. 나는 평생 도자기를 새로 장만한 적은 없으나 낡은 도자기를 보면 깨트리게 된다고. 나는 차라리 숲의 나무와 버섯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조용히 혼자서 여유를 잦고 벗을 기억하게 될 때가 있다.
P346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린 경우에는 되찾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마음의 성정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되찾는 방법을 모른다. …… 부지런히 마음을 닦는 까닭은 단지 그 잃어버린 마음의 성정을 찾기 위해서이다.
P378 우리는 언덕에 둘러싸인 이곳 밭에까지 올라와 공평하고 매수되지 않은 자연의 은혜를 배웠다. 딸기와 참외는 한 사람의 밭에서 잘 자라 듯 또 한 사람의 밭에서도 잘 자라고, 자연은 우리가 아는 극소수의 착실하고 열심인 영혼들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상상할 즈음, 태양 또한 그의 언덕 비탈로 즐거이 숨어들어갔다.
P381 우리는 자신이 사건과 상황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꿈속인 듯 기어가고, 다음 번에는 정해진 운명이라도 되는 양 뛰어가 무슨 일이든 까탈을 부리거나, 아니면 부추긴다. …… 우리 각자의 삶은 바다 흐름 속으로 내던져진 굳건한 바위 방파제에 못지 않은 자신만만한 힘과 끈기와 행운으로 이루어진 듯 보인다.
P412 예술은 길들여지지 않고 자연은 거칠지 않다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인간의 예술작품도 완벽하다면 좋은 의미에서 거칠면서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결코 이뤄지지 않을 일 일는 지는 모르나, 인간이 자연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자연을 찾아내 더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P413 우리는 “배가 순풍을 받으며 나아갈 때 뱃사공이 별의 움직임을 바라보듯, 늘 넉넉함이 지성과 함께하고, 미덕을 바라보며 행동할 때 아름답다”고 한 피타고라스이 말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P414 아름다움은 대패에서 마른 대팻밥이 떨어지고, 송곳 둘레에 송곳 밥이 모이듯, 참된 길을 가는 길가에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파동은 액체가 또 다른 액체 위에 떨어지면서 만들어지는 가장 부드럽고 이상적인 움직임이다. 긴 파동은 더욱 우아한 비상이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 쉼 없이 퍼덕이는 새의 날갯짓을 보라, 두 날개의 물결침, 즉 새의 비상을 나타내는 그 물결치는 두 선은 물결에서 베껴온 것처럼 보인다.
P451 우리가 바람보다 빠르게 나아감에 따라 배꼬리 밑에서 강물이 용솟음치는 동안, 마음속에서는 가을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우리 곁을 스치는 강가보다는 한 해의 흐름을 얼마쯤 가늠해보면서 늘 계절이 일깨우는 흥미로운 연상과 느낌을 살펴보는 데 골몰했다.
P460 어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바다여행자들은 초기 바다항해자들이 묘사한 것과 같은 강풍이 몰고 오는 땅의 원초적인 자연스러운 향기를 더 이상 맡지 못하는데, 그것은 공기를 향기롭게 하여 건강에 이로움을 주던 수많은 향기 진한 자생 식물과 향내 나는 좋은 풀과 약초들이 소를 먹이고 돼지를 키우느라 사라졌기 때문이고, 그것이 오늘날 널리 퍼진 많은 질병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말에 따르면, 땅이 오랫동안 지극히 인위적이고 사치스러운 경작 방식에 지배를 받아 사람들의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돼지우리와 같은 온상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이 땅에서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 자연의 부패 속도를 정상 이상으로 높여 놓았다는 것이다.
P466 산호섬으로 둘러싸인 암초 안에는 늘 넓고 고요한 물이 있고 꾸준히 그곳에 침전물이 쌓여 그 산호섬을 수면으로 솟아나게 하듯, 사람은 누구나 바쁜 일을 하는 와중에도 어떤 수준의 흔들리지 않는 평온과 근면이 있어야 한다.
P481 시인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인생을 가꾸고, 또 한 부류는 예술을 가꾼다. 즉, 한 부류는 영양소를 위해 음식을 찾고, 또 한 부류는 맛을 위해 음식을 찾는다. 그러므로 하나는 허기를 채우고, 다른 하나는 미각을 기쁘게 한다. 글쓰기에도 두 부류가 있는데, 둘 다 위대하고 보기 드물다. 하나는 영감을 받은 천재의 그것이고, 또 하나는 영감이 떠오르는 사이사이에 발휘되는 지성과 취향의 그것이다. 전자는 비평을 넘어서서 항상 옳기에, 비평에 원칙을 제공한다. 그것은 삶과 함께 영원히 두근거리며 뛴다. …….. 다시 말해, 우리는 그의 말을 입술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느낌을 우리의 심장에 담아 놓는다.
P486 인간의 손길이 스치면 자연은 거룩함을 잃게 된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감춰져 있다. 당신은 대지의 흙에서 마음을 맑게 해야 할 뿐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P487 순수한 원시의 특성은 인간사의 모든 구분을 하찮게 만들어버린다.
P501 침묵을 통해야만 계시, 통찰, 깨달음을 얻는다.
P515 소로우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자연을 중립적,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에 어떤 도덕적,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이 교육, 자기 탐색, 영적 자각을 통해 어떤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P517 소로우는 뉴잉글랜드에서 야생 생활의 인간 대표자라 할 인디언들에게 깊이 매료되었던 것이다. 강은 소로우가 사철 내내 즐겨 찾는 산책로였다. 여름에는 강가에 있는 채니의 정원에 정박해 둔 보트를 타고 거의 매일 여행을 했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강물이 편리한 통행로를 마련해주었다.
P519 나는 콩코드 강둑 위에 서서 모든 진보의 상징인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우주와 시간과 모든 피조물이 따르는 같은 법칙에 대해 생각해 보곤 했다. 강바닥의 물풀들은 물결의 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럽게 하류로 몸을 굽힌 채 아직도 씨앗이 가라앉은 곳에서 자라지만, 머지않아 그들도 죽어 물결처럼 떠 내려 갈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바람도 없이 그저 빛나는 조약돌들, 나뭇조각들과 잡풀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성실히 이행하며 떠내려오는 통나무들과 나무줄기들은 나에게 아주 묘한 흥미를 일으켰다. 드디어 나는 이 강이 나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든 그 물결의 가슴팍 위에 띄워 보낼 결심을 했다.
P520-521 에머슨의 말처럼, 우주에서 인간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과거라는 말라빠진 뼛조각’을 끊임없이 주무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로우는 진지하고 지칠 줄 모르는 자기 수양을 통해 고양된 정신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였다. 그는 우리의 높고 고귀한 본능이 비천하고, 경박하고 세속적인 것에 오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되풀이해서 주장했다. 소로우는 상업적 돈벌이의 측면에서는 사업을 부정했지만,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생업을 꾸려나가는 것이 정신과 도덕의 단련에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P523 매우 근면하고, 대단히 체계적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시간에 높은 가치를 두는 그는 언제라도 소풍을 떠나거나 늦게까지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을에서 가장 여가가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
'2023년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14 생의 모든순간을 사랑하라 (0) | 2023.09.01 |
---|---|
23-12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 (1) | 2023.08.10 |
23-9 황혼 (0) | 2023.08.10 |
23-08 예순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0) | 2023.08.10 |
23-07 어른노릇 사람노릇 (1) | 2023.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