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년 책이야기

22-27 너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paula won 2023. 2. 3. 08:18

22-27 도종환,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문학의 문학, 2012 3. ***

P4-5 내게 퇴휴의 시간이 없었다면 뻐꾸기의 소리를 들으며 혼자 기뻐하는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말 없는 산 옆에서 ……..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청량한 바람, 그 바람의 맑은 기운과 천천히 깊은 사유로 안내하는 저녁 어스름. 그런 것들과 지낸 산방 생활은 참으로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 대지의 하늘과 바람과 물의 기운이 내 삶에 간섭하는 동안 나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P14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의 마음도 그래서 연두색입니다. …. 그의 몸짓, 언어, 표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작은 것에도 크게 기뻐하고, 사소한 것에도 상처받곤 합니다. 그래서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P19 난 한 포기도 집착하고 있다 싶으면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 생의 계절이 어떤 형태로 바뀌어도 자기 빛깔을 지니고 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햇볕도 따스함을 잃고 바람도 온화한 기운이 사라진 엄동에 제 목숨을 푸르게 지켜 나간다는 건 숭고한 일입니다.

P26 저마다 꽃을 피워놓고 우쭐댈 때도 있지만 꽃 피는 시간은 길지 않다는 걸 안 뒤부터 평범한 초록으로 몸을 바꾸고 숲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숲을 이룰 줄 알아야 홍수와 장맛비에도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옆의 나무가 뿌리 내릴 수 있어야 함께 숲이 되고 언덕이 된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연대학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산을 만드는 것입니다.

P31 비 존재가 존재를 형성하 듯, 나 아닌 존재가 있어서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보아야 합니다. 그들 중에 인연이 닿는 존재가 있으면 그는 내 삶에 어떤 형재로 든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일 겁니다. 거래 관계,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감사해야 할 존재일 겁니다.

P32 얼굴에 환한 기운이 넘치고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하고 잇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침 햇살처럼 내리는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옆에 대화할 사람이 있고, 늘 소통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뭇잎이 푸른 빛으로 반짝이고 있으면 그것들도 지금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P35 이런 날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도 고맙습니다. 맑은 물 한 사발을 마셔도 고맙습니다. 찬 샘물도 바람 한 줄기도 내 몸의 일부가 되는 걸 느낍니다. 나무의 마음, 꽃들의 영혼도 내 마음의 빈 밭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 같습니다.

P44 나이 들수록 향기롭게 살아야 합니다. 용서와 이해와 관용과 부드러움과 아량은 은은한 향기를 지닌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살아야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P54 중간중간 빈 시간이 있는 일정이 좋습니다. 애를 태우며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삶보다는 약간 헐렁해 보이지만 담담하게 끌어가는 삶이 좋습니다.

P65 사랑은 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함께 살아가는 일이지요. 서로 고마워하며 잘 나이 들어 가는 일이지요.

P91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지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으며 정신없이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너무 끔찍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적개심과 증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P98 “그릇아 큰 사람은 되는 일은 되게 하고 안 되는 일은 억지로 하지 않으니 그 인생이 쉬울 수밖에 없고, 소인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니 그 인생이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큰 사람은 자기 할 일을 자기 능력만큼 하면서 하늘의 명을 기다릴 따름인데, 소인은 어려운 일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P101 <채근담>에 보면 성실한 마음, 온화한 기운, 기쁜 얼굴빛, 순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일상을 사는 일이야말로 도가의 양생술인 단전호흡이나 불가의 수양법인 참선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P133 그는 헌 옷 입고 명아주 국을 먹어도 마음이 맑으면 남부러울 게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보다 두 배쯤 돈을 더 벌어야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맑아야 행복해집니다. 아름다운 게 아름답게 보여야 행복해집니다. 만족할 줄 알고 주어진 삶에 기뻐해야 행복해집니다.

P154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는지 살피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우리도 하루에 몇 번씩 멈추어 서서 영혼이 따라오는 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P164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기 쉽나니…….”

P177 좋은 것을 저장해 두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 가슴 저미는 음악, 잊을 수 없는 사랑, 고마운 사람, 감동적인 장면, 착한 언어, 선한 마음, 즐거운 기억, 베풀고 나누었던 시간, 좋은 만남, 가르침이 되었던 글 ……

P188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시는 능행 스님은 사람에게 죽음이 시작될 때 처음에는 땅의 성질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근육에 모여 있던 힘이 흩어지고 피부의 탄력이 사라지고 손을 쥘 힘이 없어진답니다. 다음엔 물의 성질이 무너진답니다. 몸속의 물이 흩어지면서 땀구멍에 끈적끈적한 땀이 송송 맺히는데 그래서 임종 직전에 사람들은 갈증과 짓눌림을 느낀답니다. 다음에는 몸의 뜨거운 기운이 흩어지게 된답니다. 몸이 아래쪽에서 머리로 식어 올라오거나 머리 부분에서 발 쪽으로 식어 내려간답니다. 마지막에는 바람의 기운이 무너지게 되는데 동공이 풀리면서 호흡의 횟수가 줄어들고 혈압과 맥박이 떨어지며 밖으로 나간 숨이 다시 몸 속으로 들어오지 못할 때 호흡이 멎게 된답니다.

P217 얼굴에서 봄빛이 반짝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안에 있는 충만한 기운이 그에게 내리는 사랑을 알아챈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기운을 주는 사람일 겁니다.

P243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습니다. 세상은 그런 곳입니다. 그런 돌팔매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도록 자아를 튼튼하게 키우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P272 목표로 삼은 것, 목적을 이루는 것에만 얽매여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도 소중하게 여기자는 것입니다.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다른 것은 다 희생해도 좋고, 무조건 참고 아무것도 생각지 말고 앞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목표 한 곳까지 가는 시간 자체도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 해가 산을 넘어가려 할 때의 장엄한 하늘빛, 비 그친 귀의 풀밭, 이슬을 털어내며 피어나는 들꽃 한송이, ……. 그런 소리를 들으며 가야합니다.

P281 내가 세상 모든 일을 다 책임질 수 없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집념도 강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쉬어 가는 길, 가끔은 삶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삼나무 숲길.

P294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번거롭지 않고 간소하게 사는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낭비하지 않고 검소하게 사는 마음으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허영보다는 진솔한 마음, 과시보다는 솔직한 모습으로 사는 게 내게도 좋고 남이 보기에도 좋습니다.  …… 하루하루를 고마운 마음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순간순간이 행복합니다. 그래야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밝은 햇살이 내 얼굴 내 어깨에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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