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3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좋은 생각, 2009. 22쇄. **
P42 청안이란 말이 마음에 듭니다. 맑고 평안해 지는 삶. 잠시 비 내린 다음 숲이 더 맑아졌습니다. 그대도 늘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P50 튼실한 과일을 지니는 나무들은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일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모두 소박하고 조촐한 꽃을 피우고는 봄 햇살 아래 조용합니다. 조용하지만 봄볕 아래 충만합니다. 이 봄 우리도 그렇게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59 개인이 전체의 작은 부품에 지나지 않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 밑에서 늘 조역으로 밖에 서 있지 못하던 사람들이 다 저마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모습이 우선 좋습니다. 영웅만 주목받고 나머지 인물들은 영웅을 위해 말없이 희생해야 하던 시대가 아니라 저마다 별이 되어 자기 역할과 자기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로 바뀐다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P64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삶을 선택했지만 물은 강을 이루어 면면하고 유장하게 흘러갑니다 높은 곳에 있는 산도 험한 골짜기 가파른 능선을 지닌 산일수록 더 아름답습니다.
P73 나도 매일매일의 삶에서 내가 거둔 것에 늘 감사하고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일한 만큼 거두어 가는 삶, 더 많이 쌓아두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땀 흘려 일하되 검소하게 살고, 만족할 줄 알고, 나눌 줄 알고, 기뻐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P75 나는 그들이 드 넓은 대지의 품에서 자라고 거기 깃들어 살아가기 때문에 정직하고 선량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 선량함은 단단한 흙을 뚫고 바위가 갈라진 틈을 지나 자생하는 연약한 식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P83 가을바람 한 줄기가 내 마음을 다독이는 걸 압니다. 저녁 바람이 시키는 대로 나는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합니다.
P89 올해는 얼굴로 말로 마음으로, 눈으로, 행동으로, 소리 없이 남에게 베풀고자 합니다. 큰 약속을 하기 앞서 작은 것을 고쳐나가고, 거창한 것을 이루기 위해 앞에 나서기보다 어느 자리에서 건 순간순간의 삶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P117 우리는 오늘도 잘 익어가고 있을 까요. 사람은 자연 속에 있게 해보면 그가 제대로 익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자연 속에서 드러나는 얼굴빛과표정 그리고 눈빛과 행동거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익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대도 잘 익은 빛깔의 성숙한 과일이 기를 바랍니다.
P127 사람도 담백한 사람은 편안합니다. 같이 지내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한 번 사귀면 오래갑니다. 담백한 맛은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오래 먹어도 싫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특별한 맛은 당장에는 좋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다른 것을 찾게 되는데 된장을 맑게 끓여 우려낸 맛은 우리를 그 맛에 길들입니다.
P138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으로 보낸 하루는 가슴 뿌듯합니다. …….. 좋은 사람을 만나서 유익하게 시간을 보낸 날은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 내 안의 하느님도 빙그레 웃으십니다.
P139 오랜만에 나를 위해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시도 읽어주고 새로 나온 책도 권합니다. 무엇보다 맑은 바람을 오래오래 만나게 해줍니다. 산벚나무처럼 혼자 고요 속에 가만히 있게 해주거나, 편안하게 누워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듣게 해줍니다. 그러다 잠이 오면 한두 시간 낮잠을 자게도 해줍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동안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도 청안해집니다. 몸에는 풀냄새 나뭇잎냄새가 배고 마음에는 바람소리가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눈은 초록빛 물이 들고 귀에는 새소리 풀벌레소리가 쌓여 있습니다. 내가 베고 누웠던 구름, 내 귀를 씻은 물소리는 내 안에 들어와 여전히 제 빛깔 제 소리로 살아 있는 걸 느낍니다.
P144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가식 없는 사람의 진실한 언행이 보여주는 아름다움, 꾸미고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아닌 순수한 아름다움, 그런 풍경, 그런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고, 아름다움과 하나 되어 있고 싶습니다.
P155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잇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P189 “나무가 열 장의 잎을 생산한다면 그 중에는 여분의 잎이 있다. 열 장 중 두 장은 자신의 성장에 쓰인다. 또 다른 두 장은 각각 꽃과 씨앗을 만드는 데 쓰인다. 다른 두 장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물질을 만드는 데 쓰인다. 또 다른 두 장은 스스로에게 저장되는 몫이며 나머지 두 장은 숲의 다른 생물들을 위한 것이다.”
P195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사십시오. 이 하루를 사무치게 사십시오. 물 한 모금 앞에서도 솔직하게 사십시오. 햇볕 한 줌 앞에서도 모래 한 알 앞에서도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러려고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것입니다.
P200 너무 많은 것으로 머릿속을 채우는 것보다 적더라도 꼭 필요한 것을 제대로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많이 읽고 아는 것만큼 마음이 그렇게 깊고 맑게 바뀌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을 조금이라도 바르게 실천하며 사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P203 대인은 모든 사람의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오히려 그들을 일찍이 설득하지 못함을 한탄할 뿐이다. 소인은 사실 모순투성이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절대 말하지 않고 오직 남의 잘못만을 들추어내는 데 천재다. 대인은 폭력, 금력, 권력 앞에 의연하고 겁내지 않으며, 오직 의로운 사람과 덕이 높은 사람을 겁내어 경배하고 숭앙한다.
P1-4 대인은 모든 사람에게 늘 사과하고 용서하기를 좋아해서 바보 같아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천하 사람들이 모여 떠받들고 그 덕택으로 성군이 된다. 소인은 남의 단점을 보고도 말하지 않으면 양심 부재라 하고 이를 깨우쳐준답시고 나서지만, 주변 사람들은 따지길 좋아하는 그에게서 모두 떠난다. 게다가 자기는 남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면서 남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원망하며 산다.
P211 화를 많이 낸다는 것은 나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있으면 분노하지 않습니다. 강한 자일수록 여유가 있습니다. 분노한다는 것은 속에 있는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방어행동이라는 것입니다.
P213 만남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남이 끝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즐겁고 다시 만나고 싶은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남의 자리도 그리고 그 사람도.
P244 내 몸이 겪는 통증을 짐승도 똑같이 느끼고 내가 갖는 두려움과 환희를 풀과 나무와 산과 물도 똑같이 느낀다고 생각할 줄 알게 되면 하찮아 보이는 미물도 함부로 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P256 다양한 색깔들이 서로 공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빛들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우리는 아름답게 바라봅니다. 자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빛깔이 어울려 내가 돋보이고 나로 인해 다른 빛이 드러나 보이는 그런 삶이 아름답습니다. ……… 서로 빛깔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이 다채롭고 풍요로운 것입니다. 나와 다른 빛깔의 사람들이 잇기 때문에 내가 더 알아가야 할 영역이 잇는 것이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미완의 과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P273 어떤 싸움이든 싸움은 상대방만 다치고 나는 온전한 경우는 없습니다. 서로 크고 작은 상처가 나게 마련입니다.
P275 “인생의고통은 소금과 같다네. 하지만 짠맛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잔이 되는 걸 멈추고 스스로 호수가 되게나.”
P286 사랑한다는 것은 조금 더 믿고 기다려주는 일인지 모릅니다.
P301 그러나 소리가 크고 외양이 화려한 사람들이 가고 난 자리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건 참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참나무 알 불 같은 사람은 한 번 사귀면 만남이 오래오래 갑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오래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P316 많은 것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적은 것을 깊이 있게 만나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적게 만날 때는 가까이서 자세히 보게 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산국화 한 송이도 가까이서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향기롭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은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는 일도 필요합니다. 깊이 있게 알아가노라면 분명히 그 사람의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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