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책이야기

21-45 아름다운 수필 1

paula won 2021. 11. 21. 09:09

21-45 이태동 엮음, <아름다운 수필 1>, 문예출판사, 2011. 17. **

P28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P60 이상스럽게도 가구는 낡아질수록 사람을 닮아간다. 사물은 뜻이 없는 물질이지만 사람과 함께 오랫동안 살면서 손때가 묻게 되면 생명감을 풍기게 된다.

P82-83 나는 이때 온 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서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 나 할까.

P113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자욱해 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솜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 든 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P117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P118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사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P122 멋은 자연스러운 것. 자연스러운 것은 생명 그 자체며 정신이나 행동거지에서도 자연스러울 때 멋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P124 우리 민족의 문화는 멋으로 집약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직선은 생경하다. 그러나 곡선은 유연하다. 그리고 흐름이다. 우리의 산천이 그러하고 우리의 구조물, 의복할 것 없이 일체의 생활용품에도 곡선을 선호한 흔적이 역력하다.

P148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지닌 인품의 향기처럼, 두물머리에서부터 물은 유연한 흐름을 지닌다. 여기 비끼는 햇살이 비치니, 흐름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두물 머리는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 보기에 아름다운 것보다 깊이 지니고 있는 뜻이 아름답다.

P159 나는 한꺼번에 다 팔지 않겠소. ……. 나는 이 장터를 사랑하거든요. 난 여기 앉아 햇빛을 즐깁니다. 나는 햇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 잎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아요. 여자들이 어깨에 두른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숄도 모포도 담요도 보기 좋아요. 또 나는 친구들을만나는 것이 좋아요. 친구들이 와서 인사하고 담배를 피우며 아이들과 곡물에 대해서, 집에서 키우는 가축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인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 나는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스무 줄의 양파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이 양파를 한꺼번에 당신에게 팔아버린다면 나의 하루는 끝이 납니다. 그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할 것입니다.

P170 참다운 지혜로 마음을 가다듬은 사람은, 저 인구에 회자하는 호머의 시구 하나로도, 이 세상의 비애와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P204 아무도 당신에게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 당신이 그냥 보면 된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허심탄회 빈 마음으로 보라는 것. 남의 눈을 빌 것 없이 자기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대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P231 아일랜드의 민족시인 예이츠의 변한 얼굴의 슬픔  그대 늙어서 머리 희어지고 잠이 많아져/ 난로 옆에서 꾸벅일 때, 이 책을 꺼내서 천천히 읽으라/ 그리고 한때 그대의 눈이 지녔던 부드러운 눈매와/ 깊은 그늘을 꿈꾸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기쁨에 찬/ 우아한 순간들을 사랑했으며// 거짓된 혹은 참된 사랑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는 지를/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대의 순례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그대 변한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음을,/

P240 우리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작은 순간들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은연중에 내비친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P256 아무리 큰 실패를 하고 아무리 어려운 역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크게 볼 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꽃이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있듯이, 내가 한 번 실패해도 세상은 거기 그대로 있다.

P281 “진정한 수집가에게는 한 권의 고서를 얻는 것이 곧 그 책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은 ….. 그러나 내가 이들 책을 계속해서 읽지 않을 때는 그 생명을 완전히 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