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7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 김영사, 2003. 21쇄. **
P36 “당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충고는 바로 이것 이오. 좌절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원숭이가 골프 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여행을 계속 하시오.”
P74 그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나는 온갖 신기한 직업을 봐 왔었다. 길거리에서 귀 후벼 주는 사람, 밤에 손전등을 켜고 도심지의 쥐를 잡는 사람, 둥근 저울로 몸무게를 달아 주고 1루피씩 받는 사람, 점심때 집에서 회사까지 도시락을 배달해 주는 사람, 그런가 하면 기차가 역에 들어왔을 때 대신 자리를 잡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P80 그렇다. 나는 살아 오면서 줄곧 소리를 질러 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주장을 내세우며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언제나 소리를 질렀다. 해마다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자주 문명의 충격에 시달린다. 그것은 인도 문명에 대한 충격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받는 충격이다. 이곳에선 눈만 뜨면 모두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른다. ….. 그리고 저마다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소리를 지르고 있다.
P85 그날 밤, 나는 모기장에 매달려 명멸하는 반딧불이들의 숫자를 세며 잠이 들었다. 신비한 눈을 가진 인도 여인 소마가 잡아다 준 데칸 고원의 반딧불이 들은 여행과 곧3ㅗㄱ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듯 그렇게 언제까지나 반짝여 주었다. 그리하여 내게는 고독과 두려움 대신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 만이 남게 되었다.
P90 “진리는 단순한 것이오. 마살라 도사(속에 야채를 다져 넣은 인도식 팬케이크)를 먹을 때는 마살라 도사만 생각하고, 탄두리 치킨(닭고기에 향료와 요구르트 등을 발라 진흙 화덕에 구운 것)을 생각 하지 말 것!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행복할 것이오.”
P93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잇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되는 법이오!”
P96 나의 한 부분이면서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 내가 받은 상처, 타인에게 준 돌이킬 수 없는 아픔들, 그것들 때문에 나는 자주 고통받았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P138 그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운 바산트의 두 달이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저녁마다 갠지스 강에는 수많은 꽃 등불이 띄워졌다. 때로는 수백 수천 개에 이르는 꽃 등불들이 지사의 별들처럼 수를 놓으며 모든 이들의 소망을 담고 먼 바다로 흘러갔다. 나는 자유로운 여행에 지치기도 했지만, 때로는 생이 가져다 주는 독특한 아름다움에도 지쳐 있었다.
P143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방문해, 물감으로 서로의 이마에 지혜의 눈을 찍어 주며 인사를 나눴다. 묵은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맞이하는 그 고장의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더불어 컬러 축제에는 어떤 색깔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P145 세상을 떠나와 하릴없이 여러 날을 보냈지만, 나 역시 그 어느 기간보다 내 자신을 돌아볼 수가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아픔이 있었고, 그 아픔은 유일하게 시간만이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은 어린 시절에 잃어버린 한두 개의 꿈을 되찾으려는 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P165 히피 여행자들 사이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히말라야 무산소 등반을 하고, 요세미티 계곡에서 뗏목 타기를 하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번지 점프까지 해본 뒤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바로 인도에서 운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P169 인도 여행을 하고 난 뒤, 여배우는 까닭없이 밀려왔던 삶의 허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 , 우리가 어떻게 삶의 허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육체를 갖고 살아 있는 한.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충실한 운전수 바부와 마음을 열고 다가와 그녀를 치유해 준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음을.
P171 인도여행에서 내가 터득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도인들의질문에 절대로 대답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번 대답하면, 질문이 끝이 없었다. 그러나 인도 여행에서 내가 배운 게 한 가지 더 있다면, 인도인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09 가난과 인간 고통의 대명사 캘커타. 그곳은 지구의 블랙홀이라 불린다. 전체 인구 천 백만 명 중에서 5백만 명이 빈민가에 살고 있고, 또다른 2백 5십만 명은 길거리에서 잠을 잔다. 이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보다 훨씬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여기고, 시와 글을 싣는 잡지가 3천여 종이나 발간되는 기상천외한 도시 캘커타! 인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캘커타 지하철 벽에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가 적혀 잇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자랑스럽게 주장하듯이 캘커타는 ‘시인의 도시’인 것이다.
P210 괴테는 1797년에 이렇게 고백했다. ‘십 년만 젊었어도 나는 기필코 인도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내 자신 속에 있는 어떤 것들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P224 인도는 내게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했다. 세상을, 사람들을, 태양과 열에 들뜬 날씨를, 신발에 쌓이는 먼지와 거리에 널린 신성한 소 똥 들을, ……. 내가 누구이든지, 그리고 내가 어디에 서 있든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축복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여행자로서의 중요한 통과 의례였다.
P228 그곳에는 관광객이 되어 보름이나 한 달 정도 관광지를 순례하는 것만으론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어떤 놀랍고 신비한 세계가 있다. 잊을 수없이 영혼에 각인되는 만남이 있다. 인도를 향해 떠나는 사람이 간직해야 할 명제는 이것이다. ‘인도를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어느 곳에서든 진정한 인도, 혹은 진정한 삶의 신비와 맞닥뜨릴 것이다.
P229 다른 사람들이 세워 놓은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나는 자유라 부른다.
P257 “오늘 당신은 이렇게 기적적으로 방을 구했잖은가. 그러니 오늘은 그 행운을 맘껏 누리라. 내일은 신이 당신을 위해 또 다른 멋진 계획을 세워 놓았을 테니까.”
P259 “돌로 만든 인형, 헝겊으로 만든 인형, 소금으로 만든 인형이 있다. 이 세 개의 인형이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돌로 만든 인형은 아무 변화가 없었으며, 헝겊으로 만든 인형은 물을 흡수해 잔뜩 부풀었다. 그리고 소금으로 만든 인형은 바닷물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그는 벌거벗었지만 단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리에 대한 추구도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은 돌로 만든 인형과 같아서 진리의 세계에 살면서도 전혀 진리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헝겊으로 만든 인형처럼 진리의 체험으로 자신의 에고를 채워 자만심이 더 커진다. 진정한 추구자는 소금으로 만든 인형과 같아야 한다. 진리를 체험하는 순간, 진리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녹아 없어져야 한다.”
표지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멀었다. 여행 중에 나는 진정한 홀로 있음을 알았고,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배웠다. 내가 살아 있음을 가장 잘 증명해 줄 수 잇는 것은 곧 여행이었다. 여행이 좋았다. 여행 도중에 만나는 버스 지붕과 길과 반짝이는 소금 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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