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019년 책이야기/2019년 책이야기

1907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읽기

paula won 2019. 3. 29. 10:40

1907 박숙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읽기>, 푸른 역사, 2017. 2. **

P47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마냥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살아 잇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라고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한 일이라고 말이다.

P130 여차장 제도도 비슷했다. 19611만여명 이던 버스안내양이 197133,000여명이 넘었다. 학력 제한이 없는 직업, 하루 18시간 근무, 올리버 트위스터가 울고 갈 직업이었다. 피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합숙소와 하루 60원짜리 식사, 양장 본 책 한 권 가격도 안되는 2,000원의 월급은 눈 질끈 감고 참았지만 차비를 중간에 삥땅 친다는 이유로 몸수색을 강행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옷을 거의 발가벗긴 채 몸수색하는 것에 반발해 여차장 100여명이 새벽에 집단 탈출하기도 했다. 196618세 권희진은 거의 옷을 벗기 운 채몸수색과 구타를 당한 후 한강 인도교에서 투신 자살했다.

P175 소년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연일 뛰어 다녔다.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에도 뛰고, 친구에게 달려갈 때에도 뛰었다. 학교 종이 울려도 뛰었고 울리지 않을 때에도 뛰었다. 뿐이랴. 집에 갈 때에도 뛰었고  ….. 뛴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존재 증명이었다. 길거리에 흔한 건 소년 소녀들 뿐이었다.

P191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다고 말하는 이윤복 어린이는 동정할 수 있지만 바로 가까이에 있는 시꺼멓고 더러운 얼굴의 소년에 대해서는 꼭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우범자처럼 혐오스러웠다. 물론 불공평한 세상에서 부자는 미워할 수 잇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미워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배웠으며 심지어 도와주어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 마음의 길과 윤리의 길이 꼭 잘 들어맞지는 않았다. 100평의 집에 사는 사람과 20평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의 크기가 달랐고 집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인 시대였다.

P236 책을 읽는 것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타인을 통해 를 만나는 일인 동시에 타인을 경유해서 내가 속한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나와 다른 나, 타인 너머의 타인, 그 있음직한 세계의 상상이다. ……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무엇이고 국민이 누구인지 생각했던 전후세대의 청년, 1960년대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경험한 한글세대 대학생’, 그리고 해방 이후의 삶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어낸 여성들’, 마지막으로 가난한 삶 속에서 소외를 경험했던 노동하는 소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국가와 언어, 성별과 노동의 한 복판에서 벌거벗은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중심에서 살고 싶었던 삶을 꿈꾸면서 책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