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9 박완서 글, 민병일 사진, <모독>, 학고재, 1997, 6쇄. **
P28 대체적으로 이 근방의 농촌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은 부자 랄 것도 없지만 부족한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느긋하고 근심 없고 충족된 표정으로 잘 웃었다. 수양이나 투쟁으로 얻은 것이 아닌 천성적인 자유스러움이 보기에 참 좋았다.
P39 하나같이 무욕하고 겸손하고 착해 보이기만 하는 이곳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부처와 인간, 성과 속이 헷갈렸다. 내가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저 사람들이 바로 부처로 보이고 절 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P55 포탈라 궁은 돌과 나무로만 지은 고층 건물인 데도 삼백여 년 동안 끄떡없이 유지되는 세계적인 불가사의다.
P120 등신대의 가면극 인형들이 우리를 반겼다. 원색적인 화려한 의상은 우리 가면극 하고 달랐지만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탈의 표정은 우리의 탈 – 먹중, 미얄할미, 포도대장, 팔먹중, 취발이, 말뚝이, 양반, 노장과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그 옛날부터 문화의 교류가 있었다기보다는 몽고 인종의 상상력의공통점이 아닐 가.
P148 라다크에서 보는 검소함 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고 사는 데 근원적이다. 제한된 자원을 주의 깊게 이용한다는 것은 인색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검소함은 적은 것에서 많은 것을 얻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P221 만년설에 뒤덮인 초모랑마, 너절한 수다를 떠느니 침묵으로 오체투지하는 게 이 위엄과 미를 아울러 떨치고 있는 세계의 지붕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P224 팅그리의 밤 하늘처럼 신비하게 별이 빛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잃었던 유년기의 신비까지 가슴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혹독한 기후를 견디며 불모의 황원에서 노숙하는 유목민도 저런 밤하늘을 이고 자리가. 그들의 상상력이 화려 찬란하고도 천상적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P248 낙천적인 네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활기차고도 명랑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귀엽고 붙임성 있고, 네팔 여자들은 미인인 데다 멋 내기를 좋아한다. 거의 다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데 인도의 사리하고 같다. 현란하면서도 세련된 색상은 그들의 미적 감각과 함께 풍족한 자연 환경의 혜택을 짐작하게 한다.
P333 티베트에서 본 설산 다르고 비행기 타고 본 설산 다르고 포카라에서 본 설산이 다른데, 포카라에서 본 설산이 가장 아름답다. 돈 내고 비행기 타고 본 게 후회될 정도로 아름답다. 티베트에서 본 설산의 표정은 엄혹한 데 포카라에서 보면 상냥하고 우아하다. 티베트에서는 5,000미터쯤 히말라야를 기어 올라가다가 보는 셈이니까 훨씬 현실적이지만, 새는 노래하고, 나무들이 우거지고, 온갖 꽃들이 만발한 봄의 한 가운데서 보는 설산은 환상적이다.
P342 네팔 정부는 등산과 트레킹을 엄격하게 구별해서 6,000미터 이상의 정상을정복하는 것을 등산으로 치고 그 이하를 걷는 걸 트레킹이라고 한다. 등상네는 여러 가지 제한을 가하고 아주 고액의 입산료를 징수하지만 트레킹은 여행자라면 누구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보고 싶게 돼 있다. 그 대신 쉬엄쉬엄 가면서 이용하는 식당이나 숙박 시설에서 외화를 떨구기를 바라는 거니까 가면서 물이나 차도 사 마시고 요기도 하는 게 좋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다고 그러면서 접촉하는 시골사람들로부터 얻는 게 많다.
P343 네팔 여행은 그런 부담없이 상대방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신기해 하며 인정해 주고 같이 즐길 수가 있어서 좋고, …… 트레킹을 하고 나면 책임감과 약속에 얽매인 사람 노릇과 공해로 질식할 것 같은 몸과 마음이 당분간은 견딜 수 있는 생기를 회복한 것처럼 느껴져서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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