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019년 책이야기/2017책이야기

17-13 조선팔천

paula won 2017. 4. 16. 04:54

1713 이상각지음, <조선팔천>, 서해문집, 2011, 2. **

P80 소세양 외에도 황진이를 사랑한 인물은 많았지만 그 중에 이사종의 이름이 뚜렷하다. 선전관으로서 노래를 잘했던 그는 송도의 천수원 시냇가에 누워 노래를 불렀는데, 때마침 근처에서 놀던 황진이는 노래에 감동했다. 그가 당대의 풍류객 임을 알아본 황진이는 며칠 동안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다가 6년을 동거하기로 계약했다. 그때부터 황진이는 3년동안 먹고 입을 만한 재산을 이사종의 집에 옮겨 두고 첩이 되어 부모와 처자를 지성으로 섬겼다. 3년 뒤에는 이사종이 황진이의 집에 와 살면서 일가를 돌보았다. 마침내 정해진 6년 기한이 끝나자 황진이는 깨끗하게 그와 헤어졌다고 한다. 야사가 사실이라면 황진이는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리 부부보다 500여 년이나 앞 선 여성운동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10-111 박성춘은 개화의 열풍 속에서 백정이라는 굴레를 안고서도 조선 기독교의 지도자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이런 그의 활약은 아들 박서양의 인생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첬다.  … 1904년 남대문 복숭아 골에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다음 의학교도 병설하여 한국청년들에게 의학을 가르쳤다. 그때 박서양도 세브란스병원 의학교에 입학해……. 교수로 활동하던 박서양은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국권을 빼앗기자 1917년 학교를 사임하고 간도 연길현으로 가서 구세의원을 개업했다. 1924년경 연길현에는 한국인 15만여 명, 일본인 14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의사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합쳐 52명뿐이었고, 대부분이 한의사였다. 게다가 한국인이 경영하는 병원은 구세의원이 유일했다. 그곳에서 박서양은 연인원 1만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는데, 그 중 3분의 1일 무료진료를 받았다.

P299 옛날에는 초상이 나면 사자의 시신은 화려한 꽃상여를 타고 애절한 상엿소리와 요령 소리와 함께 이승을 떠났다. 요즘에는 대부분 간편하게 영구차를 이용하지만 유서 깊은 문중이나 일부 시골에선 상여를 이용하기도 한다. 산 자의 집에서 죽은 자의 무덤까지 상여를 운반하는 사람이 상여꾼이다. 한데 조선시대 상여꾼들은 승려나 무당처럼 팔천 가운데 하나로 천대받는 신분이었다.

P307 한국인은 사람이 죽으면 육신인 백은 땅에 묻히고 영혼인 혼이 저승사자에게 끌려가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다고 여겼다. 때문에 상을 당하면 제일 먼저 사잣밥을 차려 저승사자를 달래고 상여에 그의 마음에 드는 여러 상징을 묘사함으로써 망자의 저승 행이 순조롭기를 바란 것이다. 그 가운데 동자는 생전에 선악 행위를 명부에 기록하고 신에게 보고하는 존재다. 연꽃은 청정 세계를 상징하며, 신령한 동물을 타고 잇는 인물은 무한한 신통력을 가진 천사의 존재로서 외경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상여에 새겨진 조각에는 육신이 사라져도 영혼은 영원 불멸이라는 한국인의 사생관이 담겨 있다.

세계의 천민; 인도의 달리트, 일본의 부라쿠민, 유럽의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