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 범우사, 1976, 2014 4판3쇄. **
P10 ‘향충’ 이란 호화스런 중국요리의 연석에서나 볼 수 있는 비싸고 귀한 벌레의 이름이다. 연회가 끝날 무렵 주빈 되는 사람이 그것을 입에 넣고 깨물면, 깨문 당사자는 냄새를 맡지 못해도 좌중은 갑자기 퍼지는 그 향기에 모두 황홀해진다고 한다.
P11 “이웃의 불행을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가짐 하나면 우리들 자신도 향충이 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P18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 이걸로 시장기만 속여두오.”
P53 1년, 이태 – 때로는 3년까지 그냥 내버려둔다. 계절이 바뀌고 추위 더위가 여러 차례 순환한다. 그 동안 상처 났던 바둑판은 제 힘으로 제 상처를 고쳐서 본대로 유착해 버리고, 균열 진 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흔적만이 남는다. 가야의 생명은 유연성이란 특질에 있다. 한 번 균열이 생겼다가 제힘으로 도로 유착 결합했다는 것은 그 유연성이란 특질을 실지로 증명해 보인,
P111 그 날 하루 V씨는 씽긋 웃고는 그 손에서 5원 하나를 집어 간 어린 놈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메마른 서울살이에서 잠시나마 그런 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V씨에게는 그지없이 흐뭇하고 행복스러웠다. 그나마 그 행복의 대가는 단 5원.
P124 행복이란 금마차를 타고 풍악을 잡히며 저쪽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란 것을! 내가 심고 내가 가꾸는 하나의 ‘보람’ –거기 무너지지 않고 낡지 않는 행복의 씨앗이 숨어있다는 것을!
P135 시퍼런 달걀 같은 거 말이지. … 오리알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속에 묻어 두거든 … 한 반년쯤 지난 뒤에 ‘흙덩이를 부수고 껍질을 까서 술안주로 내놓는 건데, 속은 굳어져서 마치 삶은 계란 같지만, 흙덩이 자체의 온기 위에 따로 가열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
P142 모든 예술의 근간은 인생에 대한 사랑, 그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유독 수필은 ‘사랑’이란 밑거름 없이는 피어나지 않는 꽃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내 향토, 내 겨레에 대한 사랑 – 따스한 사랑의 체온만이 좋은 수필을 낳게 합니다.
P149 독자 자신도 생각하고 느껴야 할 권리를 가집니다. 쓸 말을 다 써 버리지 말고 읽는 이의 몫도 남겨 놓아야 합니다. ‘나’란 자신이 얼굴을 내밀 때는 독자와 나 사이에 공통된 무언가가 반드시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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