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 조용헌, <백가기행>, Design House, 2012. **
P12 바쁘면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없다. … 집 안에 세 가지를 갖추고 싶다. 첫째는 다실 茶室이고, 둘째는 중 정 中 庭 이요, 셋째는 구들장이다.
P24 명재 윤 중 고택의 굴뚝은 1m정도 높이로 나지막하다. 그 이유는 주변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 부잣집 굴뚝 연기는 위화감 조성의 원인이었다. 또한 명절 무렵에는 추수한 나락을 곧바로 창고로 옮기지 않고 일부러 대문 바깥에 일주일 정도 야적해 놓았다. 주변의 배고픈 사람들이 조금씩 퍼 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P32 아버지가 조부의 방으로 들어갈 때 곧바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일단 1.5평 방을 한 번 거쳐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부자지간일지라도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서로 존중했음을 엿볼 수 있다.
P36 보통사람의 토종 정원; 나주 죽설헌; 전남 나주시 금천 면에 자리한 죽설헌은 자연미 넘치는 토종 정원이다. 20년 직장 생활을 마감하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길러온 나무들과 함께 손수 흙을 갈고 묘목을 심어 가꾸어 온 평범한 사람의 정원이 바로 죽설헌이다.
P42 선비는 대나무를 보아야 속기 俗氣를 턴다고 했던가! 대나무는 사철 잎사귀가 푸르고,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댓잎에서 흔들리는 소리가 빗소리 같기도 하다. 그리고 대숲에 들어가면 서늘한 느낌이 있다. 이 서늘한 느낌이 삶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인 과열을 내려주는 작용을 한다.
P46 “대략 보름 간격으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도록 유실수를 심었다. 5월초에는 딸기와 양 앵두가 나오기 시작한다. 5월 중순에는 보리수, 6월 초순에는 매실, 버찌가 나온다. 6월 말에는 무엇이 익는가. 자두, 살구, 복숭아다. 7월초에는 포도,8월 말에는 무화과, 9월 초에는 배, 10월에는 밤과 홍시가 나온다. 겨울에는 벽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고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P88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조선 팔도 최고의 부잣집; 경주 교동 최씨 고택;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지만 경주 최 부잣집은 12대에 걸쳐 300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했다. 동학혁명을 비롯한 각종 사회적 변란을 겪으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가문을 지킬 수 있였던 배경에는 부와 함께 대를 물린,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주변 100리 안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와 같은 금욕적 원칙을 지키고 나눔을 실천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P92 ‘재물은 똥과 같아 집에다가 가만히 쌓아두면 주변에 냄새가 진동하고, 밭에다 거름으로 주면 곡식을 얻게 해준다’
P100 계곡의 물소리에 번뇌가 사라지는 집; 해남 두륜산 대흥사 앞 유선여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전라남도 해남의 유선여관. 두륜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꺾어 드는 계곡에 자리하고 있어 물소리를 벗 삼아 하룻밤 머물기 좋은 곳이다. 계곡물 소리를 베고 누우니 심신의 번뇌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P110 하룻밤 묵는 데 3만 원을 받는 2인실, 6만원을 받는 4인실, 12만원을 받는 8인실로 나뉜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쓴다. 방바닥은 반들반들한 장판으로 되어 있고, 벽에는 남도의 산수화 액자가 걸려있다. … 밥도 먹을 수 있다. 저녁에 차려주는 밥상은 1인당 1만 원, 아침은 7천원이다. 저녁반찬은 병어찜, 제육볶음, 조기구이, 미역국, 된장국 등이다. …
P112 생각이 커지는 작은 집; 장성 축령산에 도공이 지은 한 칸 오두막집; 집은 사는 이의 인생 철학을 담는다. 한 도공이 스무 날 동안 혼자 지었다는 한 칸 오두막집이 있다. 공간이 작아 오히려 생각이 커지고 자신의 내면과 진지하게 마주하게 하는 집이다.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숫가를 떠 올리게 하는 이 오두막집은 물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P120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 말고 ‘자기를 위해서 한가하게 사는 것이 결국 남는 장사’라는 이치를 말해주고 있다.
P138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집; 양평 건축가 조병수 씨의 땅 집; 건축가 조병수 씨는 땅을 파서 지하에다 집을 지었다. 지하 3.2m 깊이에 가로세로 7m 마당과 6평 집이 있는, 지붕이 곧 지표가 되는 집이다. 땅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고요함을 찾아가는 것이다.
P164 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고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근심이 없다; 하동 시인 박남준 씨의 악양산방;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가응ㄹ 바라보며 너른 들판을 품은 따. ‘굶어 죽는 사람 없고 자살하는 사람 없다’는 지리산의 온화하고 풍요로운 기운이 내리쬐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 시인 박남준 씨의 3칸 오두막집이 있다. 한 달 생활비 30만원 이면 족하다는 이 빈 자는 자연의 품 안에서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P185-188 누마루는 앉아서 바깥 경치를 감상하기 위한 곳이다. 부채를 들고 누마루의 난간에 팔을 걸치고 앉아서 바깥의 산세나 구름, 안개, 비가 오는 모습 등을 감상하는 공간이 사랑채의 누마루다.
P202 문필가의 글방; 장성 휴휴산방 休休山房; 전남 장성군 서삼면 추암리 백련동 축령산 자락에 자리한 ‘휴휴산방’은 필자의 글방이다. 글을 쓰기 전에 편백나무 숲을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와서는 뜨거운 구들장에 누워 긴장을 푼다. 주변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15평짜리 소담한 황토 집, 그가 20년 넘게 찾아 다니다 구한 ‘조용헌을 위한 명당’이다.
P207 한번 장작을 지펴 불을 때면 온기가 사흘간 유지되는 황토방 20센티미터가 넘는 돌 위에 소금과 솔잎을 깔고 구들장을 만들었다.
P210 <벽암록 碧巖錄>의 ‘휴거헐거 철목개화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라는 글귀에서 따왔다.
P214 구들장 깔린 방 하나는 겨울용이고, 다른 방 하나는 바닥에 편백나무를 깐 마루방으로 여름용이다. 바닥재를 편백으로 깔아놓으니 방에 들어서면 시원한 편백 향이 반긴다. 편백나무 밑에도 역시 소금과 숯을 깔아 놓았다. 벌레가 쉬 달려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P240 예인의 풍류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집; 광주 의재 허백련 선생의 무등산 춘설헌; 전남 무등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춘설헌은 한국 근대사에서 호남 제일의 살롱이엇다. 의재 허백련 선생이 머물렀던 이곳에 호남 제일의 예인들과 사상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찻잔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다가도 흥이 나면 붓을 들었다는 의재 허백련 선생. 춘설헌에는 그가 품었던 예인의 풍류와 민족 사상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
P266 다실을 통해 가내구원을 실현하다; 부산 조효선 씨의 아파트 다실; 국민의 약 60%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갖춘 생존형 주택 아파트. 그 메마르고 삭막한 공간에서 일상의 고단함을 달리기 어려운 현대인은 휴식과 구원을 찾아 집 밖으로 나선다. 그러나 조효선 씨는 아파트를 다실로 꾸민으로써 가내구원의 길을 찾았다.
P267 사서삼경과 골동가구로 꾸민 다실 풍경. 60평 대 아파트 공간을 모두 다실로 꾸몄다는 이 아파트에서는 각종 다 구를 자랑하듯 늘어놓은 모습이나 자리를 옮길 수 없을 것같이 육중해 보이는 차 탁을 찾아볼 수 없다. 찻 자리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며, 공간을 비우고 단순함의 미학을 들이면 거실도 서재도 침실도 모두 다실이 될 수 있다고 조효선씨는 말한다.
P271 고도의 계산과 시행착오를 거쳐 도달하는 단순함은 어떤 효과를 내는가? 첫째는 편안함이다. 복잡하면 피곤하고 단순하면 편안하다. 아마추어는 같은 주제라도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지만, 프로는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복잡하면 번거롭다. … 복잡함이 주는 화려함 뒤에 비효율과 불편함이 있음을 겪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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