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613 의지의 청년무스타파의 이야기; 때론 잘 못 알아들어서 내용이 조금 틀릴 수도 있다. ㅎㅎ
캐나다 영어학교에서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요르단을 거쳐서 이민 온 장애인 부스타파의 스토리를 공부하고 다음날 그를 학교로 초청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생사를 오고 가는 환경에서 미사일이 터진 지점에서 가까워서 2003년 TV안테나를 고치다 파편에 맞아서 장애인이 되었다. 처음 7개월간의 재활치료는 힘이 들고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바그다드에 그린 존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지만 회복은 절망적인 상황... 그곳은 전쟁중인지라 많은 위험 중 몇 가지를 적어보면 병원에 갈 때 알카에다 택시 운전사를 만나서 아이디(신분증)를 빼앗기고 죽음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나서 신고하고, 한 번은 병원으로 가던 중 앞의 첫 번째 차가 폭발하고 멈추었을 때 다시 두 번째 차도 폭발하고 자신의 차에서 내려서 손을 모두 들고 있는데 만약 손을 내리면 바로 총살 당한다. 왜냐면 손을 내려서 폭약을 허리에서 꺼내서 폭파시키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손을 내리기에 총알이 코 앞을 스치고 지나가 누군가 죽었다고 만약 그자가 죽지 않았다면 자신의 차도 폭파 되었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에게는 쌍둥이 남여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새 아빠,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쌍둥이 동생이 생겼다고 한다. 요르단으로 피난하여- 바그다드는 건물 안에 있으면 언제 폭격으로 죽을 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집에 있지 않고 번갈아 가면서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2009년에 캐나다로 이민 오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올 때 14살의 남동생과 같이 왔는데 그는 늘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엄마가 감자를 가져오라고 하면 토마토를 가져오고, 요르단으로 가기 전 5일전에 싸우게 되어 경찰 유치장에 가게 되었는데.... 엉클이 요르단의 고위직인지라 다행히 바로 나올 수 있어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본인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옷을 입을 수도 화장실에 갈 수 도 없는 상황인지라 동생과 같이 왔다고 이곳 병원에서 전기 치료 등의 특수 치료를 받으면서 6개월 뒤에 영어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이, 굿 모닝 만 알았다고 지금 그는 우리가 보기에 자유자재로 영어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1년 전에 엄마와 쌍둥이 여동생도 캐나다에 와서 지금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남동생은 그래도 형을 지극히 위하는 지 잠을 잘 때 누가 와서 깨워도 못 일어나지만 본인이 부르면 금방 일어나 도와준다고 한다. 무스타파는 지금 엄청 바쁘게 살고 있다. 병원연구소의 봉사자로 일하고 지금은 온 콜(필요할 때 불러서 일하면 보수를 줌)로 일하고, 오전에는 재활치료로, 오후에는 영어공부로, 저녁에는 짐(체육관)에 가서 장애인 럭비선수로.... 원하는 것은 파트타임의 직업을 갖고 싶지만 고등학교 졸업이 인정되지 않아서 구하기가 어렵다고... 그래서 이번 학기가 끝나면 시험을 보려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혼자서 설 수도 있다. 그의 이야기에는 삶에 대한 애착과 그리고 보이지 않는 희망을 계속 꿈꾸는 모습이 보였다.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반 친구들(모두 이민자들)은 모두 용기를 얻은 듯 보였다. 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아라빅으로 그의 이름 싸인도 받았다. 가슴 뿌듯한 날이었다.
'캐나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0626 미국의 베이커 산을 다녀오다 (0) | 2014.07.06 |
---|---|
131111 11월의 그린팀버 공원 (0) | 2013.11.12 |
사이프러스 주립공원 2012.0902 (0) | 2013.03.31 |
Mt. Seymour Provincial Park 130319 (0) | 2013.03.20 |
201303. 캘거리다녀오다 트럭트립2 (0) | 2013.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