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5 서나형 쓰고 박세연 그림, 오늘도 집 밥, Brain store, 2008. **
p126 파전을 본다고 늘 생각나진 않는다. 이젠 직장인이다. 하루하루 버거운 스트레스를 풀고자 잔을 기울이는 샐러리맨. 내 어깨의 삶의 무게와 이어진 무거운 등짝 때문에 그날의 두려움은 옅어져 간다. .... 청춘이라 여겼던 그 시절에는 주머니가 가벼워서 파전 하나를 시켜 아껴 먹었다. 이제 주머니는 제법 넉넉해져서 파전 하나만 시키지 않아도 된다. ... 가끔은 비싼 식당도 간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은 쓸쓸하다.
p137 종일 조미료에 찌들어 부대끼는 내 속을 달래기 위해 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걸음의 끝에는 집 밥이 있다. 하루 중 가장 나다운 나로 돌아가게 해주는 밥. 합 한 공기와 감자볶음 한 접시를 부지런히 꼭꼭 씹어 먹는다.
p148 국수는 세상을 묶어 놓는 실타래다. 돌집에서는 장수의 염원을 담고 있다. 잔칫집의 잔치국수는 심심하고 은은한 맛으로 영원한 행복을 기원한다. 역전의 국수는 출출한 속을 보완하는 구원투수며, 뜨거운 칼국수는 비 오는 어느 수요일 애인한테 받은 정열의 장미꽃보다 낭만적이다. 한여름에 먹는 콩국수는 등골을 따라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가보지 않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풍경이고, 매콤하게 비벼낸 김치 비빔국수는 헤어진 애인처럼 문들 생각나 조용히 살고 있는 잔잔한 마음을 뒤흔드는 끈질긴 놈이다.
p200 부침개를 먹는다. 손자를 봐도 시원찮을 연세의 엄마는 더운 여름날에도 서서 부침질을 하고, 다 크다 못해 얼굴에 철판을 여러 겹 깔고 업데이트하며 계속 강도를 높여가는 노처녀 딸 내미는 젓가락 무기만을 들고 부침개에 덤벼들어 바삭한 바깥쪽부터 공략하며 뜯어 먹는다.
p279 나는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는 몰랐다. 지나고 나니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 그로 인해 난 좀 단단해졌다. 작은 데서 행복을 찾아가는 조금 넓어진 품과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집 밥이라는 밥 한 공기에도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 시간.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에 소금을 뿌리기보다는 따뜻하게 품어주어 새 살이 빨리 올라올 수 있게 해주었다. 집 밥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 엄마의 손맛과 정성 그리고 구수한 이야기들이 묻어있어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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