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2년 책이야기

12-44 인연

paula won 2012. 11. 7. 15:36

12-44 피천득, 인연, 샘터, 2012. ***

 

p21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p35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p63 어젯밤은 창을 열어놓고 잤습니다. 여기의 공기는 과실과 같습니다. 약보다 낫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책을 읽었습니다. 숲과 들과 산과 자갈 깔린 저 해안을 거닐고 싶습니다. 때로는 엷은 스웨이드 장갑을 끼고 도시에 가서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카페에 앉아서 오래오래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인정이 있고 언제나 배우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p72 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p147 도산선생께; 선생의 제자답지 못한 저, 그래도 선생님을 사모합니다. 선생은 민족적 지도자이시기 이전에 평범하고 진실한 어른이셨습니다. 저는 영웅이라는 존재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몹시 좋아합니다. 드골 같은 큰 인물도 예외는 아닙니다. 간디 같은 성자는 모든 욕심을 초탈한 분이지만 현대에 적당치 않은 고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상해 망명 시절에 작은 뜰에 꽃을 심으시고 이웃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주셨습니다. 저는 그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찬양합니다.

 

p164 로버트 프로스트; 그의 자연은 아름답고 온화한 것이 아니고 땅이 기름지지 않고 돌이 많은 차고 황량한 자연이다.  이 자연을 읊는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고요한 목소리다. 그의 자연은 묵화로 그린 겨울 풍경과도 같다.

 

p 166 찰스램;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동정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 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p167 찰스 램; 그는 오래된 책, 그리고 옛날 작가를 사랑하였다. 그림을 사랑하고 도자기를 사랑하였다. 작은 사치를 사랑하였다. 그는 여자를 존중히 여겼다.

 

p184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정의에 대한 대답- "한 남자가 예쁜 여자와 한 시간 동안 나란히 앉아 있으면 그 한 시간은 1분으로 생각되겠지요. 그러나 그가 뜨거운 난로 옆에 1분 동안 앉아 있으면 그 1분은 한 시간이나 되게 느껴질 거요. 그게 바로 상대성이오."

 

p214 그는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은 사람을 매혹하게 하지 아니하는 푸른 나무와도 같습니다.

 

p243 내 이미 늙었으나, 아낌없이 현재를 재촉하여 미래를 기다린다. 달력을 한 장 뜯을 때마다 늙어지면서도 나는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달력에 그려있는 새로운 그림도 나를 청신하게 한다.

 

p253 정말 좋은 친구는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다.

 

p262-263 아내, 이 세상에 아내라는 말같이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이름이 또 있겠는가. 천년 전 영국에서는 아내를 '피스위버(Peace-weaver)'라고 불렸다. 평화를 짜 나가는 사람이란 말이다.  행복한 가정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결혼 행로에 파란 신호등만이 나올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려움이 있으면 참고 견디어야 하고, 같이 견디기에 서로 애처롭게 여기게 되고 더 미더워지기도 한다. 역경에 있을 때 남편에게는 아내가, 아내에게는 남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같이 극복해 온 과거, 옛이야기 하며 잘 산다는 말이 있지.  결혼생활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긴긴 대화다. 고답할 것도 없고 심오할 것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

...........  세월은 충실히 살아온 사람에게 보람을 갖다 주는데 그리 인색지 않다.

 

p269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을 고쳐서 "인생은 사십까지"라고 하여 어떤 여인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 사십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 만하다.

 

p270 올해가 간다 하더라도 나는 그다지 슬퍼할 것은 없다. 나의 주치의의 말에 의하면, 내 병은 자기와 술 한잔 마시면 금방 나을 것이라고 하니, 그와 적조하게 지내지 않는 한 나는 건강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춘(早春)같은 서영이가 시집갈 때가지 몇 해 더 아빠의 마음을 푸르게 할 것이다.

 

^^ 선생님의 글을 읽노라면 나 역시 소녀가 된다. 그리고 욕심이 ... 사라진다.

그리고 그리 살아가고픈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