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년 책이야기

이 책을 먹으라

paula won 2022. 3. 10. 11:04

22-06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이 책을 먹으라>, IVP, 2010, 9. **

P25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제든지 책에만 얼굴을 묻고 잇지 않고, 종종 뒤로 기대어서 자신이 다시 읽은 문장을 생각하며 눈을 감으면 그 의미가 혈관으로 퍼지는 것을 느끼는독자를 요구하는 글이다. 이런 글을 위한 독서를 우리 선조들은 렉치오 디비나라고 불렀는데, 종종 영적 독서라고 번역되었다. 이 독서는 마치 음식이 우리의 위장으로 들어오듯 우리의 영혼으로 들어와서 혈관으로 퍼져 거룩과 사랑과 지혜가 되는 독서다.

P34 독서는 엄청난 선물이다. , 말이 독자에게 흡수될 때, 영혼으로 받아들여질 때, 먹고, 씹고, 물고, 느긋한 기쁨 가운데 받아 들여질 때만 그렇다. 이미 오래 전에 죽었거나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 혹은 수년의 세월로 분리된 인간의 말, 우리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이 사용하셨고 지금도 사용하시는 그 말이 책의 지면에서 나와 우리 삶에 신선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들어와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을 전달해 준다

P42 나는 삶의 권위로서 성경보다는 개인의 체험을 받아들이는 관례가 만연한 현실에 반대하고자 한다.

P43 성경은 하나님을 계시하면서 동시에 그 계시에 우리를 끌어들이고 우리를 계시에 동참하도록 초대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P63 C.S.루이스는 두 가지 독서법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책을 이용하는 독서이고 또 하나는 저자의 목적을 받아들이는 독서다. 첫 번째 독서는 나쁜 독서로 이끌 뿐이고, 두 번째 독서는 좋은 독서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 내용을 수용할 때 우리는 감각과 상상력과 다른 다양한 능력들을 그 예술가가 창조한 패턴에 따라서 사용한다. 반면 그것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의활동에 대한 보조물로 취급한다. …… ‘사용수용보다 열등하다. 왜냐하면 예술을 수용하지 않고 사용하면, 그저 우리 자신의 인생을 쉽게 하거나, 밝게 하거나, 그 수고를 덜어 주거나, 완화시켜 줄 뿐, 그것에 무엇을 더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P99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의 말씀은 그 텍스트를 오염시키는 개인적 기호와 문화적 가정, 죄의 왜곡, 무식한 추측으로 계속해서 덧칠되고 있다. 오염 물질은 언제나 대기 중에 있으면서 성경에 먼지가 쌓이게 하고 우리의 언어 특히 믿음의 언어를 부식시킨다.

P109 “이 책을 먹으라라는 은유는, 성령이 성경을 통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형성하시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은유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더 아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다.

P127 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다시 한 번 장거리 달리기의 매끄러운 리듬과 고요함, 고독, 고조된 감각, ……. 달리기는 신체적인 행위에서 발전해 묵상과 성찰과 기도를 달리기에 가져오는 하나의 의식으로 발전했다.

P139 “우리는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나 자신에게 말하실 때에만 그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P169 ‘메디타티오는 독서의 행위에서 기억력이 계속해서 활동하게 하는 훈련이다. 묵상은 텍스트에 나오는 말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텍스트의 세계로 들어간다. ……텍스트의 세계는 우리의 정신이나 경험보다 훨씬 크고 더 진정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P173 묵상은 텍스트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상상력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을 공상 혹은 환상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 나는 워렌 위어스비가 공상과 상상력을 구분해서 말한 것을 좋아한다. “공상은 메리에게는 어린 양이 있었다라는 노래를 쓰지만, 영감 받은 상상력은 여오화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시를 쓴다. 공상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상상력은 옛 세계에 대한 통찰을 준다.”

P178 아타나시우스는 시편의 천재성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했다. “대부분의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말한다. 반면, 시편은 우리를 위해서 말한다.”

P192 영적으로 성경을 읽는 렉치오 디비나의 맥락에서 관상에 잔긴다는 말은 읽다라는 단어와 살다라는 단어가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음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관사의 삶은, 태초에 있었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며 현재에도 주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반응할 때 계속해서 우리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삶이다.

P216 분노와 경악이 사그라지면서 나는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 ‘이 세상을 따르지않지만 성령 안에서 강건하고도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기를 바라며 목회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P241 신약 성경 저자들은 자신이 문학적인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들은 문어체 헬라어로 글을 썼을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완전히 대중적인 언어로 말씀하셨다. …… 그 문법과 어휘들은, 성경을 대중이 이해하는것과는 다른 어떤 형태로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소리쳐 항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