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 최순우,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학고재, 2009. **
p17 그렇다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결코 큰 덩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뜰 앞 잔가지에 구슬 진 영롱한 아침 이슬, 오솔길에 차분히 비에 젖은 낙엽, 서리 찬 겨울 달밤 빈 숲 잔가지에 쏟아지는 달빛, 예를 들자면 한이 없지만 고맙고 즐거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갈피갈피 느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낙이 젊음과 사랑의 생리 속에 속속들이 스몄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p76 모진 겨울바람이 불어 닥쳐 오면 이 고운 용담 꽃들은 그만 기진해서 눈 쌓인 산기슭에 갈색의 촉루를 남기고 죽어가지만, 져 버린 삶이 아니라 불태워버린 삶처럼 이 꽃의 마른 꽃 가지마저 나는 좋아한다. 용담이나 억새 같은 마른 꽃 가지를 길게 꺾어다가 백자 항아리에 꽂아 놓고 한 겨우내 바라보면 싱싱하게 살아 있는 꽃 가지보다 더 속삭임이 절실해서 마음이 늘 차분하게 가라앉는 까닭을 알 듯도 싶어진다.
p105 이 나무가 들어선 곳은 바로 내 방 영창 밑이어서 아침마다 잠이 깨면 영창을 열어젖혀 놓고 바라보았으며,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이면 이 루비 색 열매와 잔가지마다 이슬이 맺혀서 꽃보다 곱다기보다는 진정 보석보다 곱구나 싶을 때가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오래 살아야지(자연이 아름다워서)' 하는 생각을 뇌까려 보면서 슬픔인지 기쁨인지 분간할 수 없는 행복에 젖고는 했다.
p151 한국적이란 말은 한국 사람들의 성정과 생활 양식에서 우러난 무리하지 않는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 호젓한 아름다움, 그리움이 깃들인 아름다움, 수다스럽지 않은 아름다움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 속을 고요히 누비고 지나가는 익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아울러서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괴괴한 풍모를 비바람에 씻기는 괴석은 말할 것도 없고, 들 앞의 이지러진 돌확 하나, 오래 된 암자의 오르막길에 운치 있게 놓인 닳아빠진 댓돌들 또는 옛 절터의 이끼 긴 담장 돌 하나에도 돌의 아름다움은 무한히 스며 있다."
"예술이란 하루 아침의 얄팍한 착상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재치가 예술일 수는 더욱이 없는 일이다. 참으로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서 한 눈 팔 수 없는 외로운 길을 심신을 불사르듯 살아가는 그 자세야말로 정말 귀한 예술의 터전일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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